컨텐츠 바로가기

09.20 (금)

스몰 웨딩 말고 스몰 비혼식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스몰 웨딩은 환상, 비혼자의 불만은 현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명석 | 문화비평가



20대의 결심이 평생을 좌우한다? 백세 시대엔 안 어울리는 말이지만, 내게도 중요한 선택들은 있었다. 전공, 직업, 다음엔 결혼이겠지? 그런데 ‘누구와 결혼할까’는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누구든 자라며 성적 정체성을 깨닫듯이, 내겐 결혼이 필요 없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러자 이런 고민에 빠졌다. 내 결혼식은 없을 건데 남의 결혼식에 가야 해?



사회생활 초반엔 남들처럼 어울려 식에 갔다. 그러다 점점 불편함이 커졌다. 남들이 하니까 반성 없이 따라 하는 관혼상제의 과정이 거북하기도 했지만, 가장 껄끄러운 건 축의금이었다.



새 직장에서 월급 명세서를 받는데 몇만원이 쑥 빠져 있었다. 총무과에 물어보니, 얼굴도 모르는 직장 동료의 경조사에 자동으로 돈이 나간단다. “말이 돼? 법적으로 문제없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허허 웃었다. “너도 결혼해서 받아.” “연수원 있을 때 하면 최대한 ‘땡길’ 수 있대.’ 나는 부글부글했다. “그럼 이혼하면 돌려주냐? 결혼 안 하면 ‘YWCA 위장 결혼식’이라도 해서 돌려받아야 해?”



결혼한 친구들의 속내를 들어보니 축의금을 거저먹는다는 건 오해였다. 손님들 식사비, 교통비, 선물 등으로 결국 다시 나간다는 거다. “그럼 결혼식을 하지 마.” 나의 냉정한 말에 씁쓸히 웃었다. “결혼식은 내가 아니라 부모님 행사야.” 수십년 지인들의 결혼식을 다녔으니 당연히 자식 결혼식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거였다. 축의금이든 위신이든.



그렇다면 문제는 거대한 결혼식 아닌가? 그래서 영화 ‘어바웃 타임’ 같은 낭만적인 스몰 웨딩을 해보려던 친구들은, 결코 만만찮은 비용과 ‘그래도 한국이니까 해야 하는 절차’ 때문에 두배는 힘들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큰 결혼식을 하면, 친척에 지인에 동창에 다양한 무리들이 몰려온다. 당연히 반가운 경우도 많겠지만 서로의 옷차림, 자동차, 연봉을 비교하는 스트레스도 따라온다. 어쩌면 예비군 훈련 같은 의무감으로 황금의 주말을 바치는 것일지도.



나는 비혼을 넘어 반혼에 가까운 생각으로 친구들을 협박했다. “너 결혼하면 나랑은 남남이야.” 동조자가 거의 없었고, 결국 외롭게 선언했다. “이제 저는 남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 주의입니다.” 저러다 말겠지 무시하기도 했지만, 진지하게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그런 게 아냐. 사회적 자살일 수도 있어.”



벼랑 끝에 선 나를 친구들이 감언이설로 꼬였다. “식 끝났고 동기들 모임에라도 와라.” “누가 하객으로 오래? 사진 좀 찍어달라고.” “피로연에 와서 공연 좀 해주라.” 심지어 주례로 와 달라는 극단적인 제안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한번은 당일에 신부가 너무 애원해 나섰는데, 버스정류장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선 돌아왔다. 마침 지나던 지인이 말했다. “차려입은 집시 같네요.” 이젠 남의 결혼식을 망치지 않을 복장도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결혼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뀌었다. 결혼을 독립의 수단으로 적절히 이용하고, 둘이서 알콩달콩 행복을 키워 주변에 나눠주는 사람들도 보았다. 무엇보다 내게 강요하는 이가 없으니 나도 악을 쓰고 반대하지 않는다. 갔다가 돌아오면 잘 받아주고, 갔는데도 간 줄 모르기도 한다. 예전처럼 결혼 여부부터 묻는 문화가 사라졌다.



요즘 비혼식이나 비혼여행을 하며 지인들에게 축의금을 걷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비혼 선언을 하면 축의금과 유급휴가를 주는 기업체도 있다고 한다. 늦었지만 훌륭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축의금 5만원, 10만원, 20만원 엑셀 파일을 만드는 일 자체를 안 하면 이런 번거로움도 없을 거다.



나는 거창한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그래도 뜻하지 않은 실험을 했으니 결과는 전해 드려야지. 삼십년 남의 결혼식에 안 간 사람이 살아남았다. 친구는 별로 없지만 결혼식 안 와도 이해하는 절친만 있다. 결혼식 열심히 다니고 인맥을 쌓았으면 큰 보상을 얻었을 수도 있지만, 다시 물어도 선택은 같다. ‘혼자 고양이와 사는 남자’가 ‘주말마다 애매한 지인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내고 맛없는 갈비탕 먹으며 고양이를 외롭게 만드는 남자’보다는 나으니까.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