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내린 뒤 기자회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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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년 넘게 싸워온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의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으로 30개월 만에 통화정책을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피벗)하면서다. 시장에선 Fed가 빅컷을 택한 것은 경기 후행지표인 고용시장의 냉각을 막기 위한 선제조치로 풀이한다.

Fed는 이날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존 5.25~5.5%였던 기준금리를 4.75~5%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12명 위원 중 한 사람을 제외한 11명이 빅컷에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결정한 것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휩쓸었던 2020년 3월 이후 4년6개월만에 처음이다.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졌던 한국(3.5%)과 미국의 금리 격차는 최대 1.5%포인트로 줄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Fed는 성명서를 통해 “FOMC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2%를 향해 가고 있다는 더 큰 자신감을 얻었고, 고용과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한 리스크는 대체로 균형을 이뤘다고 판단한다”며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통화정책) 완화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고 평가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Fed는 지난 2022년 3월부터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해 연 5.25~5.5%까지 올렸다. 22년 만에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한 금리는 지난해 7월부터 1년 넘게 동결됐다. Fed의 물가와의 총력전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2022년 6월 고점인 9.1%에서 지난달 2.5%로 낮췄다. Fed가 30개월 만에 정책 재조정(피벗)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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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컷 배경은 ‘고용냉각’ 선제 방어

Fed가 빅컷에 나선 것은 통화정책의 무게 중심이 물가에서 고용으로 옮겨온 것으로 시장에선 분석한다. 7월 실업률은 4.3%로 2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8월 일자리(비농업 신규 고용)는 전월 대비 14만2000명 늘어나 예상치(16만2000명)를 크게 밑돌았다.

이번 정책결정문에서도 고용 증가세는 기존 ‘완화’(moderated)라는 표현이 ‘둔화’(slowed)로 바뀌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기자 회견에서 “해고가 늘기 시작하면 너무 늦는다. 노동 시장이 좋을 때 금리 인하로 대응해야 한다”며 “통화 정책의 적절한 재조정은 고용시장 강세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가 이번 빅컷은 ‘정책 실기(失期)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한다. 허진욱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Fed가 2022년처럼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에 대응해 앞서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성 인하(빅컷)’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시장이 냉각되기 전에 과감히 돈을 풀어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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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종 금리 4.4% 제시…시장엔 ‘실망감’

박경민 기자

Fed가 금리 인하 문을 열었지만, 속도를 더 당길 것으로 시장은 보지 않는다. 점도표(Fed 위원들의 금리 전망 도표)에 따르면 올해 연말 기준금리는 4.4%(중간값)로 제시했다. 연말까지 남은 두 차례(11월과 12월) FOMC 회의에서 추가로 약 0.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내다본다는 얘기다. 내년 이후 기준금리 중간값은 2025년 말 3.4%, 2026년은 2.9%다. 내년에는 1%포인트 추가로 금리 인하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시장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파월 의장은 “0.5%포인트 인하를 새로운 금리인하 속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추가 인하 시기와 폭은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빅컷’ 단행 소식에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장중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가 각각 0.25%, 0.29% 하락세로 전환한 배경이다. “향후 인하 속도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또 Fed가 빅컷 결정에 나설 만큼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투자 심리에 반영됐다.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향후 ‘빅컷’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차단했다는 점에서 ‘매파적 빅컷’이란 평가를 내놨다. “Fed가 물가와 고용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며 경기 연착륙을 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시티그룹)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Fed가 ‘비둘기적인 베이비컷(0.25%포인트 인하)’과 ‘매파적인 빅컷’ 중 후자를 선택했다”고 했다.

김영옥 기자

한편, 앞으로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도 미국에 발맞춰 기준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이날 카타르ㆍ사우디아라비아ㆍ바레인 등 주요 중동 국가들이 잇따라 정책금리를 내렸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연 3.75%에서 3.50%로 인하한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르면 10월 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것이 유력하다. 3회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한 캐나다중앙은행(BOC)도 다음 달에도 추가로 금리를 내릴 전망이다. 지난달 금리 인하를 시작한 영란은행(BOE)도 오는 11월 추가 금리 인하가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피벗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 숨통을 틔워 줄 것”으로 전망했다. 본격적인 글로벌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된 셈이다.

염지현ㆍ곽재민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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