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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딥페이크 성착취’ 누가 축소하나 [권김현영의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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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6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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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지난 9월12일 7차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한덕수 총리는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대책을 묻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에스엔에스(SNS)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일어난 일이며 정부 잘못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윤석열 정부는 법무부 산하 디지털 성범죄 티에프(TF)의 권고를 이행하지도 않고 해체한 바 있다. 이것이 어떻게 현 정부의 책임이 아닐 수 있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2주 전의 답변은 완전히 달랐다. 한 총리는 8월27일 총리공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딥페이크 문제에 대해 마약 같은 수준으로 확고한 단속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8월27일과 9월12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9월2일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가 있었다. 이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하 호칭 생략)은 법무부 장관에게 ‘성착취물을 유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매개를 처벌하거나 매개를 차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냐’고 질문하며 “텔레그램으로 성경 구절을 보내면 그건 전혀 범죄가 아니지만 비둘기 다리에 묶어 가지고 성착취물을 날려 보내면 그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이는 매개는 매개일 뿐이란 것으로, 텔레그램 대상으로 이뤄지는 경찰 수사 무용론을 주장했다. 또 아이폰을 통해 범죄 방조가 된 경우에 애플을 입건할 수 있는지를 예로 들며 아이폰 비밀번호를 스무 자리 넘게 썼다고 알려진 한동훈 대표를 저격하는 데 시간을 쓰고, 텔레그램을 쓰는 사람을 모두 범의를 가진 자로 볼 수 있냐며 대통령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딥페이크 성착취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할 시간을 한동훈과 윤석열을 놀려먹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이어진 질문에서는 중학생이 만들어서 올렸다는 딥페이크 피해학교 목록과 경찰이 확보하고 있는 명단이 다르지 않냐는 질의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동탄시에서 딥페이크 피해가 일어난 것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니까 이준석이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한 일은 기술매개 성착취라는 문제에서 기술매개라는 차원의 특이성을 비둘기 다리에 비유하며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찰 수사 의지를 꺾고, 실제로 피해자가 있는지 제대로 조사할 것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가 ‘없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한 것이다. 단속부터 입법까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던 총리가 갑자기 정부 잘못이 없다고 고개를 빳빳이 든 것은 이 질의가 있었던 다음이었던 것이 과연 우연일까.



다시 한번 지금의 사태를 정의해보자. 이 문제의 핵심에는 딥페이크를 통해 가족을 포함한 지인을 능욕하는 포르노가 대량 제작되었고 이것이 재화로서 거래되었다는 데 있다. 이번 사태가 기존 디지털 성범죄 문제와 유사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점은 포르노를 제작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딥페이크가 ‘상용화’된 단계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를 정부가 방치한 결과 이를 막기 위한 기술 개발이 늦춰지거나 상용화되지 않으면서 피해와 가해의 규모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포르노는 기술혁신의 숨겨진 엔진”이라는 것은 인터넷 기술혁신 분야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두 알고 있는 전제다. 광대역 통신망의 채택, 스트리밍 비디오, 온라인 결제 시스템, 라이브 채팅 등 모든 인터넷 기반 산업의 상업적 성공은 포르노 산업을 통해 발전해왔다. 딥페이크는 여기에서 한번 더 산업적 도약을 이루어낼 것이 분명하다. 딥페이크 분석 및 탐지 전문 회사 딥트레이스의 보고서를 보면 2019년까지 온라인 딥페이크 동영상의 96%가 동의 없이 조작된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포르노였다. 단 하나의 얼굴 이미지로 60초짜리 딥페이크 포르노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분이며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발간된 딥페이크 관련 통계와 기술동향 보고서 모두의 공통된 의견은 사태의 규모는 확대되면 확대되었지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묻지 않을 수 없다. 구매, 제작, 유통, 관람 네트워크에 들어 있는 가해자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왜 이 문제를 축소하는 것일까?



여성현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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