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0 (금)

[법없이도 사는법] ‘2심 유죄’ 도이치모터스 전주, 판결문 보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검찰 로고/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전주(錢主) 손모씨가 1심과 달리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2심에서 추가한 ‘주가조작 방조’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손씨의 유죄 판결은 역시 전주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의 처분에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의 처분이 도이치모터스 2심 판결 이후로 미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권오수 전 회장이 2009년~2012년 주가조작 세력을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렸다는 내용입니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 5부(재판장 권순형)는 주범인 권 전 회장과 주가조작 ‘선수’ 김모씨,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다만 권 전 회장은 1심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에서 2심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으로 기간이 다소 늘어났습니다.

손모 씨는 주가조작 선수 김씨의 권유로 도이치모터스 주식 75억여원 상당을 매집해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은 “전주는 맞지만 시세조종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이 2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했습니다. 정범(正犯)의 고의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매수자금을 대고 이익을 낼 것을 독촉하는 등의 행위로 김씨의 주가조작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유죄 인정된 손모씨, 문자메시지 보니

2심 재판부는 방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손씨가 주가조작 선수 김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제시했습니다. 내용 상당 부분은 손씨가 김씨를 질책하며 심하게 원망하는 내용입니다.

2012년 3월 21일 손씨는 김씨에게 “오늘 또 사기치면 용서 안한다. **(김씨 이름)아 나를 더 이상분노하게 하지 말아라. 인연을 악연으로 만드는 천치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3월 29일엔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이것은 아니야. 너 어떡할거야 나까지 이 수렁에 빠지게 해놓고 이것은 아니야 사기야 사기 너 어떡할꺼야 너 이것 못해내면 나 죽는 거야 연락다오(후략)” 란 문자를 보냅니다. 4월 3일에는 “장난도 아니고 이것은 사기야 **아 이 고비 넘어야 돼 꼭 답을 가지고 와 아침에” 라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주가가 하락하고 이자부담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자 김씨를 심하게 탓하는 내용”이라며 “단순히 종목 추천을 받아 자기 책임하에 투자한 사람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김씨가 도이치 주식에 대해 시세조종을 하고 있으므로 투자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손씨에게 주었고 손씨가 이를 믿고 대량으로 주식을 매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손씨가 큰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매수해 주가를 띄우거나 주가하락 시기에 매도 물량을 통제하는 등으로 김씨의 주가조작을 도왔다고 판단했습니다. 손씨의 도이치 주식 매수금액 총액은 52억 6000여만원에 달합니다.

◇김 여사와 증권사 직원 대화도 공개

재판부는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한 내용도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이처럼 기소된 사람 뿐 아니라 전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통화 내용을 통해 거래의 성격을 판단한 게 이번 판결문의 특징입니다.

김 여사의 증권사 계좌는 권오수 전 회장이 주가조작에 이용한 계좌 중 하나로 등장합니다. 이에 대해 권 전 회장은 “전주인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에게 일임매매한 것이고 나는 관여한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증권사 직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게 아니고 사실상 피고인 권오수 등의 의사로 운용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010년 1월 25일 김 여사와 신한투자증권 담당자와의 통화 녹취록은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김>네. 지점장님

직원>네. 여사님 지금 4만주 샀구요, 239원이고 되면 정가에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김>네. 알겠습니다.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직원>예예예

김>네. 알겠습니다.

아마도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다’는 표현으로 볼 때 직원에게 일임된 매매가 아니라 권 전 회장의 결정에 따라 직원이 거래만 대행하는 형태의 매매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1월 26일에도 비슷한 형태의 대화가 나타납니다.

김>네. 지점장님

직원>네. 여사님, 네네 지금 2440원까지 8000주 샀구요 추가로

김>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

직원>네네 추가로 2440원까지 그렇게 사겠습니다.

김>네 알겠습니다.

직원>사지만 문자로 수량과 가격 보내겠습니다.

김>네 그러세요

총 346쪽의 2심 판결문 중 김 여사는 84회, 어머니 최은순씨는 33회 등장합니다. 권 전 회장이 주가조작에 이용한 계좌의 계좌주로 언급된 내용입니다.

◇김 여사 처분, 시기와 방향은?

계좌주가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되려면 ‘선수’에 지시하거나 가담한 정황이 나와야 합니다. 손씨의 경우 재판부가 주가조작 선수 김모씨에게 보낸 문자 등을 근거로 그가 김씨의 주가조작 사실을 알았으며 매수자금을 대주고 수익을 낼 것을 압박하는 형태로 ‘방조’한 행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김 여사의 경우 2심에선 직접 증권사 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이 적시됐고, 그에 따르면 단순히 증권사 직원에게 계좌를 맡긴 일임매매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손씨와 같이 전주로서 ‘주가조작 방조’로 유죄가 인정되려면 김 여사의 경우에도 권 전 회장의 주가조작을 알고 가담한 사실이 인정돼야 합니다. 2심까지 유죄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권 전 회장도 주가조작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전주 대 전주’로 손씨와 김 여사의 대화 내용을 비교하면 거래의 몰입 정도나 주가조작 ‘선수’와의 관계도 사뭇 다릅니다. 이런 상태에서 14년 전 거래에 대해 내심의 의사에 해당하는 ‘공모’ ‘가담’을 밝혀내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검찰로서도 2심 판결 직후 속전속결 형태로 김 여사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1심에서 전부무죄가 났던 ‘전주’ 부분이 2심에서 일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과연 검찰이 여론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바로 무혐의 처분을 낼지,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보는 식으로 좀 더 시간을 두고 볼 지 주목됩니다.

법 없이도 사는 법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5842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