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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할아버지 구술 채록을 공적인 역사로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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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
이동해 지음 l 푸른역사 l 1만7900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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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포레스트 검프’였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미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 속에 남들보다 다소 모자라지만, 우직한 성품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를 끼워 넣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4~63년생)에 해당하는 주인공은 그 시대를 살았던 미국의 평범한 시민을 상징한다. ‘길 위의 독서’(2018, 뜨란)를 펴낸 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당신이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란 말이었다. 인생서평이란 부제가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그간 읽었던 책에 대한 서평을 씨줄 삼아, 생애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었다.



그런데 포레스트 검프만 그런 삶을 살았을까? 강의를 시작하는 매 학기 첫 주마다 학생들에게 공통으로 내주는 과제가 있다. ‘역사 속의 나’란 주제로 자신이 태어나 현재까지 살아온 생애를 우리 역사와 결부시켜 써보라는 글쓰기 과제다. 이런 주제를 과제로 내었던 까닭은 매번 처음 만나게 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일종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현재 내 삶의 좌표가 어디쯤인지 스스로 확인해보라는 목적도 있다. 이들이 제출한 글을 읽다 보면 특정 시기에 출생한 세대가 집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사건들이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학생들은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가, 1997년을 전후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세월호 참사, 촛불 시위에 나섰던 경험 등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동일한 세대여도 경험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동해 선생이 쓴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현재 대학에서 사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저자는 자신의 외할아버지 허홍무 옹의 개인적인 삶을 채록하여 책으로 펴냈다. 손자가 할아버지의 삶을 구술채록하는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지만, 역사학도인 그는 한 개인이 경험한 삶의 편린들을 하나하나 꿰어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집합적 역사로 재구성해냈다. 역사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사는 공적인 역사이자 증언이 된다. 제2의 금광왕을 꿈꿨던 외조부의 파란만장한 삶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 꿈이 허망하게 무너진 뒤 일자리를 찾아 ‘인천육군조병창’까지 흘러오는 삶의 내력은 인천 지역사는 물론 해방전후사와 연결된다.



일일이 의식하며 살아가기는 어려워도 우리는 항상 역사를 살고 있다. 구술사 연구는 미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목소리, 남길 수 없었던 시대의 증언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때로 승자들은 사료를 의도적으로 폐기하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를 왜곡했고,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은 문서 기록을 남기기 어려웠다. 이런 시대적 한계 때문에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기록을 비롯한 우리 역사의 비극 중 상당 부분은 생존자의 구술채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구술사 연구는 텍스트 중심의 사료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적 역사쓰기’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그간의 구술사 연구 작업 중 상당 부분은 정부나 기관이 주도하는 사업이 많았고, 역사쓰기보다 구술자료 수집에 치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 구술사 연구방법론이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고, 그에 따른 성과물이란 점에서 그 의미를 평가해볼 수 있다. 역사 앞에서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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