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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우리 삶 빼놓은 탁상공론 막겠다" 기후소송 이끈 이들의 다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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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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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4년 전 제기된 기후소송의 결론을 내렸다. 일부 헌법불합치였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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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기후소송이 끝났다. 기후소송에 참여했던 기후위기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최저선을 정했다"는 점에는 의미를 뒀다. 미래세대에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의 기후대응책에 헌재가 경종을 울렸다는 거다. 그럼 청소년기후행동의 다음 목표는 뭘까. 김보림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에서 일부 승소했습니다. 4년 전 처음 소송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기면 사법부 역시 그 변화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 헌재가 설정한 '마지노선'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그동안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해온 방식을 더 이상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게 헌재의 생각인 듯합니다. 정부는 지금껏 '장기계획이 불충분해 보이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국가 차원의 기후 계획은 앞으로 계속 만들어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해왔는데, 헌재가 이를 뒤집은 셈이죠."

탄소중립법 제8조 1항은 탄소감축량의 목표치를 2030년까지만 정해놨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유엔 회원국 195개국이 동의한 파리 협정에서 '탄소중립'의 시기로 명시한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얼마만큼 줄일지를 계획한 국내법은 없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부분이 바로 이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커버 총론에서 자세히 다뤘다.

✚ 이번 헌재의 결정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어떻게 보고 있나요?

"아시아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사법기관이 기후위기와 권리문제를 다룰 때 이번 헌재의 결정을 중요하게 볼 가능성이 높아요. 일본이나 대만 등 기후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선 이번 결정보다 더 개선된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죠."

사실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공통 과제다. 2023년 지구 평균 온도는 1850~1900년의 평균 온도보다 섭씨 1.45도가 올랐다. 미미한 숫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 1.5도는 폭염 일수를 2배 이상 늘리고 어획량을 가파르게 줄일 수 있는 위험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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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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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막기 위해 유엔 회원국 195개국은 파리협정을 통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배출량=탄소흡수량)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따라 195개국은 탄소중립을 위해 국가별 목표 설정(NDC)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유엔 회원국인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우리나라도 2031년 이후의 탄소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탄소감축 목표를 세울 때 가장 빈곤하고 취약한 세대가 '공정한 분담'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위험을 적절히 통제하고 사회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감축을 목표로 삼는 것도 중요합니다."

✚ 다소 어려운 말이네요. 사회적 취약계층의 공정한 분담과 사회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의 감축은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는 지금 화석 연료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화석 연료의 생산이나 사용을 중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예를 들자면 화력발전소에서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이 한번에 실직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됩니다. 그래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을 어떻게 바꿀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기회를 부여할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 범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주장이군요.

"그렇습니다."

✚ 정부가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시나요.

"글쎄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과 불안을 느끼는 시민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나 큽니다. 이번 소송을 치르는 과정에서 국민 5289명의 말과 글을 모아 만든 '국민참여의견서'를 전달했었는데요. 시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위험, 사회 양극화, 삶의 불안정함이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국민 의견을 수렴하면 괜찮을 텐데요.

"탄소중립위의 현 구조로는 실질적으로 시민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위원회의 한 자리를 차지한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를 다룰 순 있겠지만 기후위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삶의 변화를 모두 대변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모든 걸 원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정부가 짜놓은 탄소 감축 정책에 명분을 실어주는 위원회가 돼선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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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후위기의 영향은 갈수록 커질 겁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들더라도 지금까지 배출한 것들이 미치는 영향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습니다. 이런 기후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똑같이 보호받을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법적 제도적 보호막을 만들고, 사회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합니다. 정부가 다양한 이야기를 수렴해야 하는 이유죠."

✚ 앞으로 법적 제도적 안전망을 만들자고 요구할 계획인 건가요.

"시민의 삶을 빼놓고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감축을 이야기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생각이에요. 그렇다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찾아가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기대하는 방식을 사용하진 않을 겁니다."

✚ 그럼 어떤 방식을 활용할 계획인가요.

"헌재에 5289명의 국민참여의견서를 전달한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어떤 법이 필요한지, 우리에게 필요한 '최저선'이 무엇인지 등을 더 많은 사람의 말로 설명해 나갈 겁니다. 정부가 시민의 삶을 중심에 놓고 탄소 감축량을 정하고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세우도록 말이죠."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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