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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보고 싶은 것만 보다 ‘진짜 고통’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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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의정갈등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정부도, 의사도 아닌 환자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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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현재 의료 상황과 관련한 회의에 들어갔다가 현 상황을 무엇으로 부를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했다. 나는 지금을 ‘의사파업’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데, 파업의 기본 요건, 즉 공동 쟁의가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의사협회 대표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을지언정, 의사가 집단으로 업무 행위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현재 파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다.



전공의와 학생들이 동맹 휴직과 휴학을 한 게 아니냐고 말씀하시겠지만, 여러 일과 상황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누군가 ‘동맹’으로 휴직이나 휴학을 주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될까 싶으실 수도 있고, 정부는 누군가 주동자가 있다고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의대 증원을 포함하여 현재의 정부 정책 결정을 개인이 볼 때 의사로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사회가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의료계에서도 위중한 일로 보고 있고, 그 결과에 대한 판단을 개인이 내린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미래의 의사들에게 정부가 내민 카드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고, 이에 대한 개선 없이 어떠한 변화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점을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는 단어로 나는 ‘의정갈등’을 택한다. 정부의 정책안에 대해 개별 의사가 불화하고 있는 상황. 물론 정부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집단이 그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원체 이 사이에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나, 정부가 애초에 조정이나 회유의 의지가 없으며 오히려 상대방을 악마화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정리도 해결도 없는 상황이 지금 상황의 본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정부도, 의사도 아닌 환자다.



이를 극명하게 예시하는 것이 9월12일 있었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총리의 태도다. 이날 교육·사회·문화 분야와 관련하여 남인순 의원이 소위 현안으로 인한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하자, 환자가 죽어 나가는 것은 ‘가짜뉴스’라며 한 총리가 오히려 화를 낸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며 최근 보았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라는 현안에 갇혀, 배경의 고통과 죽음을 ‘가짜’로 묵살하고 마는 그 마음을 보는 일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고통과 죽음임에도, 그것을 지워버리려 하는 억지를 견뎌야 하는 일이라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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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제76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 및 칸 사운드트랙 수상,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국제영화상, 음향상 수상으로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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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한 가정을 그린다. 단 한 순간을 빼면 영화 내내 그려지는 것은 한 독일 장교 가정의 평온한,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사는 이 가정, 가장은 수용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내는 꿈에도 그리던 가정과 일상을 향유하고 있다며 기뻐한다. 아이들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잠깐 가장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지만, 그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과 후임자의 실수로 금방 복귀한다.



이런 구성으로만 보면, 영화에는 아무런 갈등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중상류층 가정을 조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 전반에는 끊임없이 고통의 소리가 흐르고 있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내내, 배경에선 수용소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과 외침, 총소리와 타격음이 들린다. 영화는 한번도 표현하지 않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저 바깥에서 끔찍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 말 그대로, 그것은 그들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관심 지역 바깥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들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화면에 비치는 독일 장교 가정의 삶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들려 오는 소음에 놓여 있다. 우리는 안다. 기억되어야 할 것은 독일 장교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아니라, 고통과 참혹함 속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목숨이다.



영화도 그것을 마냥 감춰놓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소리로 시작하는 도입부로부터, 아무런 ‘건강상의 이상’이 없음에도 계속 구역질을 하여 검사까지 받는 결말부의 장면까지 영화는 내내 저 소리가, 영화 바깥에 놓여 있는 저들의 비명이 ‘진짜’ 문제임을 강조한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장교의 몸은 알고 있다. 그는 최종 해결책을 입안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소각로 설계도를 업체로부터 받아 ‘청결한’ 소각로를 ‘24시간’ 운영할 방안을 마련, 전 수용소에 보급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을 본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몸은 거부 반응을 보이며 이를 구토로 알린다.



우리의 청각은 알고 있다. 영화는 그를 보증하려는 듯이 세계대전과 수용소의 시대에서 잠시 이탈하여 ‘현재’의 기념관을, 그에 전시된 수많은 신발을, 목발을 보여준다. 지금 누구도 효과적인 소각로를 고안한 장교의 업적을 기리지 않는다. 우리는 주변에서, 바깥에서 흘려야 했던 고통의 목소리를 듣고 기억한다. 저들의 고통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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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한 장면.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내내, 배경에선 수용소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과 외침, 총소리와 타격음이 들린다.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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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응급실에 가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나





추석 앞으로 응급실 이용이 무척이나 난항을 겪을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경고가 전달되었다. 추석이 지나고 정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추석을 넘겼다고 자축했다. 그렇다면 응급실을 포함하여 현재 의료적 상황은 괜찮은가.



아니다. 통계를 보아도, 실제 사례를 보아도 현재 한국 의료는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다. 8월4일에는 수도권에서 경련을 일으킨 여아를 119가 이송하려 했으나 갈 곳이 없어 1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응급실을 찾았고, 현재 의식불명 상태다. 9월12일에는 청주에서 한 산모가 하혈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75곳에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6시간 만에 산부인과에 면책 약속을 받고 후송되었다.



9월17일에는 대전에서 복부 자상을 입은 환자가 4시간 넘게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천안의 한 병원으로 수용되었다. 소방대원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응급실을 찾는 것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호소하자 소방청은 언론 접촉을 통제하는 지시를 내리는 공문을 보냈다. 9월 의료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급실 근무 의사 수는 41% 감소하였다.



그냥 응급실이 환자를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볼 수도 처치할 수도 없는 환자만 느는 것은 응급실의 부담을 늘릴뿐더러 환자가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만든다. 간단하게, 응급실을 학교라고 생각해 보자. 교사가 없는 데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학생을 다 수용하면, 그래서 교실 학생 수가 백명, 이백명이 되면 교육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학생도 교실의 과밀 자체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현재 구조적으로 환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에 각 병원과 응급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의 여력을 벗어난 환자들이 문제가 된다.



안타까운 것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의 기능을 이렇게까지 축소시킨 것은 국가의 정책적 결정의 결과다. 여기에서 눈을 감는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정치인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정책적 결정과 정치적 승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믿는다. 이후에 남는 것은 환자의 고통뿐일 것이라고. 이 상황에서 이후에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결단’도, 의사들의 ‘노력’도 아닌, ‘가짜 뉴스’로 취급되고 있는 환자들의 어려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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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부가 ‘가짜뉴스’라고 부르짖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미 몸으로 체험하며 알고 있다. 현재의 의료 위기는 현실이고 사실이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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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다 진짜 고통 놓치지 않기를





다시 현안으로 돌아오면, 안타깝게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아집을 중재할 수 있는 정치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현재 한국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면 원로들이 움직였을 것 같다. 그나마 그런 위치에 있는 이들의 언론 인터뷰가 상황을 조금은 움직인 것 같지만, 심지어 원로들의 시국선언도 그렇게 영향력을 발하는 상황이 아님이 이미 확인된 것 같아 안타깝다.



남은 것은? 나는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정부가 ‘가짜뉴스’라고 부르짖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미 몸으로 체험하며 알고 있다. 현재의 의료 위기는 현실이고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이, 가족이, 어른들이 응급 상황에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심지어 병원에서 일하는 나 또한, 가족 한 분이 중병 진단도 지연되는 상황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시민들은 이미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감각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만 보고 있다고 해도, 이미 벌여 놓은 난국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의 소리는 그 너머 들려오기 마련이다. 부디, 보고 싶은 것만 보다가 큰 오명을 남기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준혁 | 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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