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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외국인 가사도우미, 최저임금의 벽 넘어야 성공한다 [조정훈이 소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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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시작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높은 비용 부담 때문에 일부 계층에서만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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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는 배와 같다. 인구 절벽이라는 암초가 눈앞에 보이지만, 방향을 틀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정책은 그 암초를 피하기 위한 ‘구명보트’이다. 그런데 이 구명보트는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극소수만이 탈 수 있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근본적인 문제는 최저임금이라는 높은 벽에 있다. 이 벽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의 길을 막고 있다. 한 가지 임금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크기의 신발을 신으라는 것과 같다. 그 신발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커서 걸음을 방해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작아 고통을 준다. 하나의 최저임금이라는 신발은 그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제는 모두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장벽이 됐다.



인구 절벽 막기 위한 타개 방안

비용 부담에 일부 층만 활용해

홍콩ㆍ싱가포르 정책 참고해야

서울시의 시범사업 역시 출발부터 불안했다. 필리핀 출신의 가사도우미 100명이 입국했지만, 이들은 높은 임금으로 인해 사실상 특정 계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됐다. 필리핀 정부가 인증한 돌봄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인력으로, 철저한 신원 검증을 거친 이들의 서비스 요금은 시간당 1만3700원으로 책정되었다. 하루 8시간 근무할 경우 월 238만원으로 홍콩의 약 3배에 달한다. 이는 평균적인 가구가 부담하기엔 여전히 높은 비용이다. 비용 부담 때문인지 시범사업 신청 가구의 37.8%가 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 집중됐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실제로는 육아와 가사 부담을 덜어주지 못하며, 오히려 가구 간 소득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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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들이 지난달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저출생과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날 입국한 100명의 가사도우미는 내년 2월까지 서울시에서 아이 돌보미로 근무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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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 필요



대한민국 출생률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이다. 출산과 육아라는 무거운 짐은 여전히 여성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암담한 현실 속에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때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은 새로운 다리를 놓는 일이다. 단순히 집안일을 대신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 더 넓은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다리를 통해 그들은 경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출생 대책 관련으로 출장을 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직접 들은 사례는 이러한 다리의 역할을 잘 설명해준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은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며, 젊은 부부들이 경력 단절 없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와 아내 역시 세계은행 일로 방글라데시에서 근무할 때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와 내 아내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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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새 반토막 난 가사 및 육아도우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홍콩에서 자녀를 키우던 한 여성 교수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더 좋은 제안을 받았지만, 결국 홍콩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바로 육아였다. 홍콩에서는 가사도우미가 육아를 책임져줌으로써 여성들이 일과 가정 모두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 싱가포르도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가정 내에서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함으로써 여성들이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젊은 세대에게 더 넓은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며, 경력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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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단순히 집안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더는 경력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여길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변화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임금이라는 높은 벽을 넘을 수 있는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이미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우리도 이제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을 통해 이 벽을 허물어야만 한다.

서울시 시범사업의 현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구 간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는 오히려 그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높은 임금은 이 제도가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도록 만들었고, 이는 가정 내에서 육아와 가사 부담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육아휴직, 유연 근무제 등 다양한 정책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눈치가 보이고 경력에 대한 걱정이 큰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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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차별 논란 알지만 새로운 시도해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지난 국회 회기 때 ‘최저임금 없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라는 법안을 제안했다. 현재 내국인과 중국 동포 중심의 가사도우미 시장을 외국인에게도 개방하고, 최대 5년간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이 법안은 인종차별, 국적 차별, 가사노동 폄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저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정책들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는 불가피하다.

필리핀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에서 이탈자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이는 제도 개선과 관리 강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두렵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개 속을 뚫고 나아가는 작은 걸음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처음엔 불완전하고 불편하더라도, 그 작은 걸음은 분명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조정훈 국민의힘 국회의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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