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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中 “가마솥 식는다” 190조 경기 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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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급준비율 0.5%p 인하

조선일보

일러스트=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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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상업 중심 지구인 궈마오의 ‘이타이 광장’은 지난 23일 공사가 멈춰 선 채로 뼈대를 드러낸 듯한 모습이었다. 홍콩계 자본 주도로 2012년 착공된 이 부동산 개발 사업은 지난해 기존 시장 감정가의 50% 수준인 19억위안(약 3600억원)을 시작가로 경매에 부쳐졌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유찰됐다. 한때 ‘땅값이 금값’이라 불리던 궈마오 한복판에서 부동산 사업이 좌초된 것은 이례적이다.

경기 침체가 고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지도부가 본격적인 경기 회복 조치에 나서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수장인 판궁성 행장은 2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지급 준비율을 “곧 0.5%포인트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시장 상황을 보고 추가로 0.25∼0.5%포인트 인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급 준비율’이란 은행이 비축해야 하는 현금 비율로, 이를 내리면 시중에 돈이 더 풀리는 효과가 있다. 이번 조치로 시중에 1조위안(약 190조원)이 공급되는 효과가 날 것으로 인민은행은 예상했다.

판 행장은 또 단기 정책 금리(7일물 역레포 금리)를 기존 1.7%에서 0.2%포인트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의 기준 금리인) 대출 우대금리(LPR) 등이 이로써 0.2~0.25%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라고 했다. 이번 조치는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확산 이후 중국이 발표한 최대 규모 경제 부양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가파르게 끌어올렸던 기준 금리를 2년 6개월 만에 내리며 ‘빅 컷(0.5%포인트 인하)’을 단행한 데 이어 또 다른 G2(2국)인 중국도 경기 부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금리를 내리고 시장에 돈을 풀면 경제엔 호재다. 인민은행이 구체적인 지준율 인하 시점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올해 들어 하락해 온 중국 증시는 이날 일제히 큰 폭으로 상승했다. 중국 대표 주가지수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날 4.1%, 기술주 위주인 선전종합지수는 3.9% 급등해 거래를 마쳤다. 다만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단행하는 것은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는 뜻이기 때문에 증시 상승이 일시적 반등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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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이날 기자회견엔 인민은행장 및 리윈쩌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위원회 주석 등 중국 금융 당국 ‘빅3′가 이례적으로 함께 등장했다. 중국 경기 침체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부동산 시장 침체와 그와 연동한 금융 위기에 대응하는 대책도 나왔다. 판 행장은 ‘기존 주택’에 대한 대출 금리를 ‘신규 주택’에 적용하는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새로 지은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 금리를 기존 주택보다 낮게 적용해 왔는데, 이를 기존 주택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판 행장은 이 정책으로 전체 주택 담보대출 금리를 평균 0.5%포인트 내리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베이징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대해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두 번째 주택을 살 때의 계약금(최소 납입금) 비율을 기존 최저 25%에서 15%로 낮추겠다고도 했다. 지방정부·국영기업이 미분양 주택을 대거 매입할 수 있도록 인민은행의 ‘재대출 제도’ 또한 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리윈쩌 총국장은 “은행·보험 기관이 부동산·지방정부 부채 위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유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중국 지도부는 지난 7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전체 회의인 ‘3중전회’를 통해서도 “경제성장률 5%를 반드시 달성하겠다” “강력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등이라고 밝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날 나온 조치들은 이런 기조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내림세가 가팔라지면서 이보다 적극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 침체 탓에 토지 판매 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해 온 지방정부가 심각한 부채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기업들의 경영난이 가중돼 취업난이 심화되는 한편 임금 삭감도 이어지면서 소비 및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는 악순환이 벌어진 상황이다. 미국과의 격화하는 무역 분쟁도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엔 악재다. 베이징에서 접촉한 중국의 무역 회사 관계자는 “최근 중국 경제를 지탱해 온 제조 업체들조차 생산 감소를 고려하고, 위안화 환율 급변으로 해외 납품을 망설이고 있다. 팔팔 끓었던 ‘중국 경제’란 큰 가마솥이 식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중국 제조·자재 업체는 한 달 사이 달러·위안화 환율이 크게 출렁이자 수출 시 ‘위안화·달러 환율 고정’ 조건마저 내걸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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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중국 경제의 난관 봉착은 내부에서도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7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지도부 집무처)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경제의 큰 흐름에서 봤을 때 큰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 석상에서 중국 대기업 인사들의 ‘앓는 소리’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중국 최대 기술 기업인 텐센트의 한 임원은 이달 초 선전에서 열린 공개 행사에서 “중국의 소비 다운그레이드(하락) 추세가 뚜렷하고, 과도한 투자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커졌으며, 네이쥐안(内卷·소모성 경쟁)까지 일어나며 대출로 연명하는 기업이 많다”면서 “‘케이크(경제 규모)’가 더 커지지 않으면 제로섬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에 대응하고 정치 안정을 강화하기 위해 ‘기술 돌파’와 ‘국가 안보’를 최우선 순위로 삼으면서 향후 파격적인 추가 경제 부양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관심사는 ‘고품질 발전’과 ‘신품질 생산력’이란 구호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 기반 신(新)경제 모델 구축이기 때문에 당장의 경기 회복에만 역량을 집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 분석 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국 중앙은행이 코로나 이후 가장 중요한 경기 부양책을 내놨지만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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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판궁성 인민은행장, 리윈쩌 금융감독관리총국장, 우칭 증권감독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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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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