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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이슈 미술의 세계

프레드릭 배크만 “사람들은 죽음 의식함으로써 더 충실히, 더 분노하며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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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 위해 첫 방한

“독자들 따듯한 ‘오지라퍼’ 오베에 공감

베스트셀러 작가 타이틀 부담 컸지만

익숙함서 벗어나 계속 새롭게 시도 중”

아이패드가 뭔가. 컴퓨터인가, 아닌가. 어느 날 스웨덴의 한 애플 매장에서, 한 중년 남성이 젊은 점원과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컴퓨터를 사려고 가게를 찾은 남성은 아이패드라는 제품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점원이 아이패드를 추천하자 자신이 생각하는 컴퓨터와 차이를 묻고 따지다가 마침내 언쟁으로 비화한 것이다. 남자는 정말로 화가 나 있었고, 상황은 정말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때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프레드릭 배크만은 남성과 점원 간의 언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사람들 간 논쟁이나 다툼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 그였다. 노상에서 싸움을 하거나, 자동차에서 내려 다투는 상황 역시. 어느 순간, 배크만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의 언쟁 장면이 소설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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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가 된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발표한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최근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했다. 영국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를 좋아한다는 그는 유머나 조크를 방어기제로 사용한다고 고백했다.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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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 동료 요나스 크램비는 웹사이트에 ‘오베’라는 남자가 미술관에서 티켓을 사다가 아내가 개입할 때까지 분노를 폭발하는 것을 본 이야기를 블로그 글로 썼다. 그런데 아내가 우연히 크램비의 블로그를 읽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삶이야말로 당신이 사는 삶이잖아!”

잡지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2011년, 배크만은 오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능숙하지 않던 그는, 잡지에 자신의 짜증과 폭발에 대한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바로 “나는 오베라는 남자다”. 많은 독자들이 오베라는 캐릭터에 반해 이야기를 더 써볼 것을 권했다. 그는 블로그를 계속 써나가면서 자신이 매력적인 허구의 캐릭터에 대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최민우 옮김, 다산책방·사진)의 주인공, 그러니까 깨알 같은 규정에 집착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혼돈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그럼에도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잃지 않는 ‘오지라퍼’ 오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아마 그들이 옳으리라. 그는 그 점을 결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성이 없다’고도 했다. 오베는 이 말이 자기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싹싹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는 그들에게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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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세의 아저씨 오베는,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규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고 지지를 보내준 아내 소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 살아갈 이유가 없다며 죽기를 바라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죽기로 다짐할 때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사건이 번번이 일어난다. 새로 이사를 온 이란인 여인 파르바네와, 정보기술(IT) 계열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 ‘멀대’ 패트릭, 그들의 어린 두 딸들, 아내 소냐의 도움을 받기도 했던 과체중 청년 지미 등 ‘머저리 같은’ 별난 이웃들 때문이다.

오베는 새 이웃의 차를 고쳐주기도 하고, 눈더미에 묻힌 갈 곳 없는 고양이를 키우기도 하고, 기차에 치일 뻔한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하거나 남을 도우면서 죽음을 계속 뒤로 미루게 된다. 이상한 이웃들 때문에 자살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오베,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닥쳐오고, 마침내 영웅적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소설 곳곳에선 유머와 코믹한 상황이 마치 좀비처럼 출몰한다. 유머와 단막극 같은 에피소드, 죽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기억을 따라 느리게 가다 보면 빵빵 터지던 웃음은 어느새 감동의 눈물로. 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2012년 출간된 이후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만 무려 84만부 넘게 팔렸고, 전 세계 25개국에서 번역 출간돼 280만부가 판매됐다. ‘스칸디나비아 루아르’와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작품 세계가 당도한 순간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오베라는 남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왜 사람들은 고집불통의 괴팍한 남성 오베에 열광하는 것일까. 작가의 여로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스웨덴의 젊은 작가 배크만을 최근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을 위해 방한해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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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아이디어를 오래 품고 있었다. 오베는 규정에 집착하는 인물로, 사람들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아나키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 나가는 자동차 엔진을 좋아한다. 아나키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는 아티스트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없고 체제를 따라야 한다. 오베는 소설 말미에서, 굳이 우주에 나가 외계인과 싸우지 않더라도,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현대사회를 자신의 적으로 상정한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일종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한 오베가 독자에게 큰 공감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해외에서 이렇게 인기를 끌 줄 알았다면 주인공 이름을 오베라고 짓지 않았을 것이다. 오베라는 이름은 스웨덴에서만 흔한 그 세대의 이름이다(웃음). 스웨덴에선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오베가 너무 스칸디나비아적인 캐릭터이고, 성격이나 유머를 다른 문화권에서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그런데 번역되고 나서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서른 살 전후 ‘오베라는 남자’를 썼을 때 사람들은 묻더라. 왜 제 나이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남자를 상정했느냐고. 당시 나이 차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저와 오베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공통점이었다. 저는 어려서 친구가 거의 없고 늘 외로움에 시달려 왔는데, 이런 지점을 녹여내고 설명하려 했다. 저는 또 ‘이상한 사람’에 관심을 가져왔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 다른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에 관심이 있다. 저는 그 지점에서 글을 쓴다.”

1981년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태어난 프레드릭 배크만은 2012년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그는 이후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베어타운’, ‘불안한 사람들’, ‘위너’ 등을 차례로 발표했다. 많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 세계에서 15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첫 작품 ‘오베라는 남자’가 계속 언급돼 작가로서 부담감이 많을 텐데.

“만약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처음에 미슐랭 스타 세 개를 받으면 최악일 것이다. 노력하겠지만, 앞으로 내리막만 있고 목표로 할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저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다. 부담감은 있었다. 실망시키지 않을까. 과연 반응이 좋을까. 의구심이 커졌다. 그래서 다른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서 경력이 다양했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의 경우 에이전트가 절대 출간하면 안 된다고 말리더라.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출판사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대로 차기작을 썼다면 작가로서의 성장은 거기에서 멈췄을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계속 새롭게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집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쓴다. 중간에 음악도 듣고, 종종 게임도 하기도 한다. 오후 늦게 아이들을 픽업해 집으로 데려오고 저녁을 차려준다. 귀가한 아내와 아이들이 꿈나라로 가면, 배크만은 다시 글의 세계로, 상상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곳에선 죽음을 완고하게 의식하면서 오히려 삶을 더 충실하게 살고 있는 오베도….

“죽음이란 이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죽음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양 인생을 살아가지만, 종종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죽음을 무척이나 의식함으로써 더 열심히, 더 완고하게, 더 분노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죽음의 반대 항을 의식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존재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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