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통계청장이 두 명이다. 부산 모 초등학교의 한 학급 내 어린이 총 25명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나라, '무지개(무지무지 지혜로운 개성 넘치는 아이들) 나라'에도 통계청장이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어느 열정 넘치는 선생님의 경제 교육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나라는 자체적으로 발행한 화폐, '미소'를 기반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한다. 급식 도움, 교실 청소 등 직업별로 월급(미소)이 지급되고, 국민(학생)은 이 돈으로 납세·저축·투자를 하는 것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 일자리도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
당연히 나라 살림을 위한 정부도 있다. 세금 받는 국세청, 자료를 정리하는 통계청, 그리고 교실 환기를 담당하는 기상청 등이 그 구성 요소다. '통계청'을 국가 운영의 핵심 요소로 생각하는 점이 반갑기도 하여 지난 7월 초 무지개 나라를 방문했다. 학생들의 통계 활용 능력 향상을 위해 진행 중인 '찾아가는 통계교실'의 일환이었지만,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무지개 나라의 실제 모습도 보고 동시에 격려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우선, 무지개 나라에서 통계청장을 맡은 어린이가 다양한 통계를 활용하여 인구, 성비, 실업률, 소득, 자산(현금·주식·예금·채권) 등 무지개 나라의 주요 현황을 발표했다. 이어서 나는 무지개 나라와 우리나라 통계를 비교하여 유사하거나(인구 성비, 자산 분포) 차이 나는 지표(실업률, 소득분포)를 찾고, 나름 그 이유를 유추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부는 머리를 끄떡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두가 한 어린이를 쳐다보는 일도 있었다. 아마 그 친구가 소득분포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중위소득이나 실업률처럼 다소 어려울 수 있는 통계용어를 질문해보았는데, 아이들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주식 거래를 한다는 한 어린이는 "친구 따라 투자하면 안돼요. 정보를 분석해서 판단해야 해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오해하지 마시기를, 투자 상품은 무지개 나라 회사 주식이다). 이러한 반응을 보며 무지개 나라 어린이의 경제와 통계 관념이 매우 발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의 경제 실습이 바로 살아 있는 교육이 되었음을 실감한 순간이다.
사업 설계 검증의 바이블로 통하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보면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될 놈'인지를 결정할 때는 의견보다 '데이터', 기존 데이터보다 '내가 수집한 자신만의 데이터'로 검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데이터를 분별할 줄 아는 '안목'이 있음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데이터 기반의 통계적 사고가 체화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인공지능(AI)에 익숙해져야 높은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다가올 미래의 국가와 기업, 개인 모두에게 필요한 강력한 무기를 쥐여주자. 매일 초 단위로 쌓여가는 '데이터' 광산에서 '정보'라는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그 빛의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가공 능력 말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통계와 데이터에 대해 살아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통계청도 학교 현장에 더 많은 통계 교육이 확산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해본다.
[이형일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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