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코치로 일하다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박승일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프로농구코치 출신인 고인은 2002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뒤 23년간 투병 생활을 했다. 사진은 2013년 6월 승일희망재단 주최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해 공연을 관람하는 박 대표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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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루게릭병을 세상에 알렸던 박승일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53세.
승일희망재단은 이날 “대한민국에 루게릭병이라는 희귀질환을 알리고,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과 많은 환우와 가족을 위해 애써주신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 박승일님께서 23년간의 긴 투병생활을 뒤로하고 소천했다”고 밝혔다.
2m2cm 장신인 고인은 연세대와 실업 기아자동차에서 농구 선수로 활동했다. 이후 2002년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에서 코치로 발탁된 해 갑작스럽게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ALS)은 신체 근육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희귀 질환이다.
고인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했다. 팔, 다리 등 온몸이 조금씩 굳어가고, 발병 10개월 뒤에는 양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2004년부터는 목소리까지 잃으면서 신체 중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을 이용해 대화했다. 미세한 눈꺼풀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특별한 안구 마우스를 이용했다. 이를 이용해 그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자신의 상태를 매일 알리면서 루게릭병에 관한 관심을 환기했다.
하지만 2008년 안구 마우스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극도의 절망감에 빠졌지만 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우스 대신 글자판을 이용해 대화하는 법을 터득했다. 한 글자를 짚어줄 때 맞는 글자면 눈을 깜빡이는 방식이다.
승일희망재단 공동 대표인 가수 션씨와 박승일씨가 생전 찍은 사진.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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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1년 가수 션과 함께 비영리재단 ‘승일희망재단’을 설립해 평생 소원이었던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을 위한 각종 모금 활동을 진행했다.
루게릭병 요양병원은 오는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착공식에 앰뷸런스를 타고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그는 글자판을 이용해 “이제 해방이네요”라며 감격했다.
고인의 누나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에 따르면, 고인은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고, 또 많은 분이 함께해서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25일 션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승일아 그동안 너무 수고했어. 네가 쏘아 올린 작은 희망의 공이 많은 사람들이 이어가는 희망의 끈이 되었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네가 그렇게 꿈꿔오던 루게릭 요양병원이 이제 곧 완공되는데 그걸 못 보여 주는 게 너무나 아쉽고 미안하다. 23년간 많이 답답했지. 이제 천국에서 마음껏 뛰고 자유롭게 움직여”라고 했다.
통상 루게릭병 환자의 생존 기간은 5년 남짓이지만 고인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그는 루게릭 진단을 받은 해인 2002년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며 “루게릭병 환우를 위해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009년에는 루게릭병과 맞서 싸운 시간을 기록한〈눈으로 희망을 쓰다〉(박승일·이규연)를 출간하기도 했다.
박승일씨 사연을 보도한 본지 2005년 11월 9일자 1면. |
중앙일보는 지난 2005년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기사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보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인이 눈으로 쓴 e메일을 그대로 기사에 삽입해 독자가 직접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기존 기사 틀에서 벗어나 인물의 서사에 초점을 맞춰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보도 이후 고인을 비롯한 루게릭병 환자를 돕겠다는 독자의 후원과 관심이 이어졌다.
빈소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층 1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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