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의 동고동락의 시작, 특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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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가상자산 거래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무렵 거래소 이용방법은 지금과 달랐어요. 거래소에 회원 가입을 하게되면 거래소가 시중은행의 일회용 가상계좌를 발급해줬는데요, 이용자들은 이 가상계좌에 입금한 돈을 거래소에 예치하고 코인 거래를 해왔죠. 때문에 신한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심지어 저축은행에서도 돈을 입금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 규제 긴급대책을 발표하며 시중은행이 신규발급 및 기존 계좌도 폐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소 회원가입정보와 은행 계좌주가 일치하지 않아도 거래에 문제가 없어 자금세탁방지 의무에 위반되기 때문이에요.
이후 은행이 가상자산 실명제 시스템을 구축하며 2018년 1월 30일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용자들은 은행에서 실명확인 입출금번호를 발급받아 거래 가능했어요. 이후 특정금융정보법이 등장하며 현행과 같은 거래 방식이 굳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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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와 테러자금 조달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에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의 가이드라인 배포에 따라 우리나라도 관련 제도를 정비하며 탄생하게 되었죠. 특금법 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수리 요건에는 원화 거래 가능 거래소는 은행과 실명인증계좌 제휴가 필요하다고 언급되어 있어요(특금법 제 7조 2항). 실명확인 가능 입출금 계정은 가상자산사업자의 계좌와 고객의 계좌 사이에서만 금융거래 등을 허용하는 계정을 의미해요. 때문에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로 분류된 기업들은 채비를 마친 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 후 영업을 해야 하고요.
특금법은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1년 9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는데요. 당시 63개의 가상자산 거래소 중 29곳만이 개정 특금법에 따라 사업자 신고를 완료했어요. 그 중 신고 요건인 은행과의 실명확인 가능 입출금 계정 제휴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모두 갖춘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뿐이었어요. 업비트는 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은 NH농협은행, 코빗은 신행은행과 제휴를 맺었고요. 이후 고팍스가 전북은행과 실명확인 가능 입출금계정 제휴를 맺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5대 원화 거래소 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한 은행은 어떤 이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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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금법 시행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와 은행은 한결 가까운 관계가 되었어요. 거래소는 은행과의 실명계좌인증 제휴를 맺을 경우 원화 거래소로 영업할 수 있고요, 은행은 해당 거래소 이용 고객의 실명을 확인하고 원화 입출금을 제공합니다. 그 댓가로 은행은 크게 두가지 분야에서 이득을 챙길 수 있어요. 바로 고객 예치금과 펌뱅킹 수수료죠.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자는 해당 거래소가 제휴를 맺고 있는 은행 계좌를 통해서만 현금을 넣거나 인출할 수 있는데요. 예치금은 이 때 이용자들이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에 넣어둔 원화를 의미해요. 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는 예치금을 은행에 맡겨 안전하게 보관, 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은행은 이를 운용해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죠.
펌뱅킹 수수료란 거래소 계좌에 입출금이 발생할 때마다 은행이 받는 수수료를 뜻해요. 이 수수료가 꽤나 쏠쏠합니다. 업비트와 제휴를 맺고 있는 케이뱅크는 올해 상반기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로부터 87억원의 펌뱅킹 수수료를 받았어요. 이 금액은 동기간 케이뱅크 전체 영업이익의 1.5%에 달합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제휴는 은행의 신규 사용자 유입에도 큰 도움이 돼요. 2020년부터 업비트와 제휴한 케이뱅크 실적을 살펴보면, 제휴 이후 1년만에 480만명 이상 증가해 2021년 12월 700만명을 기록했어요. 올해 5월에는 1100만명을 돌파했고요. 특히 올해는 전년대비 신규 유입 인원이 크게 증가했는데요, 케이뱅크의 공격적인 상품 출시 뿐만 아니라 올해 초 비트코인을 필두로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해 가상자산 투자에 뛰어든 신규 투자자들이 업비트에 가입하면서 케이뱅크의 사용자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요. 케이뱅크는 이같은 사용자 기반 강화 등의 이유로 지난 1분기 507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내달 말 IPO를 앞두고 있죠.
하지만 은행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상당해요. 수수료 수익이나 신규 고객 유입 등의 이익뿐만 아니라 자금세탁, 해킹 등에 따른 법적 책임 등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도 많거든요. 그래서 특금법 시행 직전, 거래소와 제휴했던 일부은행도 일찌감치 손을 떼기도 했어요. 가상자산 거래소가 제휴할 수 있는 은행의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아요.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제휴를 맺은 은행은 NH농협은행, 신한은행,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전북은행 뿐이에요.
빗썸이 KB국민은행의 손을 잡고싶어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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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과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실명계좌 계약을 체결한 은행을 변경한 사례는 존재합니다. 업비트와 코빗, 그리고 고팍스는 각각 케이뱅크, 신한은행, 전북은행과 제휴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요. 코인원이 NH농협은행에서 카카오뱅크로 제휴은행을 한차례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빗썸은 꾸준히 KB국민은행 등 타 은행과의 접촉 소식이 들려오고 있죠. 실제로 행해진 적은 없지만요.
거래소가 제휴은행 변경을 원하는 이유는 점유율 확대를 위함이에요. 이를 뒷받침하는 두가지 사례가 있죠. 첫번째, 코인원의 제휴은행 변경이에요. 코인원은 가상자산사업자 최초 심사 당시 빗썸과 나란히 NH농협은행과 제휴를 맺었어요. 하지만 NH농협은행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서 아쉬운 평을 들어왔어요. NH농협은행은 고객 연령대가 높아 젊은 투자자들이 해당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데다가 모바일 뱅킹 편의성이 아쉬운 은행 중 하나로 꼽히거든요.
농협은행은 NH스마트뱅킹, NH올원뱅크, NH콕뱅크 총 3개의 앱을 가지고 있어요. 농협은 농협 중앙회와 지역농협으로 나뉘는데요, 당시 농협의 모바일 앱은 연동이 되지 않아 계좌를 관리하는 은행이 중앙회냐 지역이냐에 따라 다른 앱을 사용해야 했어요. 반면 대부분의 은행은 하나의 앱에서 모든 모바일 뱅킹이 가능했죠. 종종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 종류에 따라 앱이 다양하더라도 슈퍼앱이 있어 제어가 용이했죠. (지금은 NH농협은행도 ‘NH올원뱅크’를 슈퍼앱으로 만들고 있어요.)
농협 앱은 월간활성이용자수도 낮은편인데요. 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KB국민은행의 모바일앱인 ‘KB스타뱅킹’의 MAU는 약 1300만명이에요. 하지만 NH농협은행의 ‘NH스마트뱅킹’과 ‘NH올원뱅크’는 지난 4월말 기준 MAU가 각각 785만명, 402만명에 그쳤고요. 때문에 코인원은 2022년 NH농협은행에서 카카오뱅크로 제휴은행을 변경한지 한달만에 신규 가입자가 198%나 증가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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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과거 빗썸이 업비트에게 시장 1위를 빼앗긴 배경에 제휴은행의 모바일 편의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원인과 유사한데가 있어요. 2019년까지 빗썸은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왔어요. 하지만 후발주자였던 업비트가 2020년 6월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점유율을 나눴죠. 그리고 특금법 이후 2021년부터 업비트가 전체 거래대금 중 75% 넘는 비중을 차지하며 업비트 독주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거예요. 쟁글에 따르면 그 비결에는 편리한 UI/UX, 타 거래소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원화 거래 수수료, 2020년 6월 케이뱅크와의 제휴를 통한 신규 고객 유치가 배경으로 꼽혀요.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빗썸, 코빗 등 다른 원화 거래소보다 후발주자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주식 투자앱 ‘증권플러스’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타 거래소 대비 편리한 UI/UX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PC로만 거래 가능했던 가상자산 거래 환경에 모바일 네이티브 앱을 선보이며 모바일 수요를 꽉 잡았어요. 당시에는 시중은행보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모바일 뱅킹 환경이 월등히 뛰어났는데요. 인터넷 뱅킹은 가입부터 송금까지 간편하게 거래가 가능했던 반면 시중은행은 지금과 달리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등 절차가 까다로웠죠.
업비트 성공신화의 배경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꼽히며 많은 거래소들이 모바일 편의성이 높은 은행을 선호하게 되었어요. 현재는 시중은행의 모바일 뱅킹 환경이 인터넷은행의 편의성을 상당부분 따라 잡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빗썸이 카카오뱅크, 케이뱅크와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 뿐만 아니라 농협은행보다 MAU가 높은 KB국민은행을 원하게 된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죠.
현재 각 거래소는 은행 한 곳만 실명계좌인증 계약을 체결한다는, 이른바 그림자 규제가 있습니다. 일명 ‘1거래소-1은행 원칙’인데요. 자금세탁에 대한 위험성 등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거래소들은 금융당국에 지속적으로 다양한 은행과의 계약 허용을 요구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단 하나뿐인 제휴은행 선정에 신중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요.
거래소들의 제휴 은행 갈아타기, 왜 이렇게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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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부분의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가상자산사업자 갱신 신고를 진행중이에요. 이에 맞춰 빗썸은 얼마 전까지 NH농협은행에서 KB국민은행으로 제휴은행 교체를 추진했죠. 빗썸이 지난달 말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제출한 가상자산사업자 갱신을 위한 사전 자료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요. 금융당국은 대외적으로 제휴은행으로서의 적정성을 평가해 승인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는데요. 며칠 전 빗썸이 NH농협은행과의 제휴를 6개월 연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금융당국이 이번 제휴 은행 변경을 승인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혀요.
과거 코인원이 NH농협에서 카카오뱅크로 제휴은행을 변경했을 때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용자들이 코인원을 이용하기 위해 카카오뱅크 계좌를 새로 연동해야 했거든요. 만약 카카오뱅크의 기존 사용자가 아니었다면 신규 계좌 입출금 한도 금액 등을 재설정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코인원은 빗썸보다 시장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변경이 비교적 용이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빗썸은 앞으로도 제휴은행 변경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일반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와 은행의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계약은 1년 단위로 진행되는데요, 빗썸은 금융당국이 추가로 요구한 이용자 보호 조치 계획 등을 보완해 내년 3월 제휴은행 변경을 재도전하겠다고 밝혔어요. 내년 3월에는 빗썸 제휴 은행이 변경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전성아 엠블록 연구원(jeon.seonga@m-block.io), 김용영 엠블록 에디터(yykim@m-block.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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