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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구본무 회장 미션으로 히트… 트럼프 건배 전통주도 골라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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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대한민국 國酒 만드는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

조선일보

대동여주도 사무실에서 만난 이지민 대표는 “10년 동안 마신 전통주가 적게 잡아도 5000종”이라며 “전국 양조장에서 매달 수십 종씩 술이 들어온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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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큐레이션·유통 플랫폼 ‘대동여주도’가 지난 24일 전통주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신아주그룹에서 100억원을 투자받았다는 뉴스를 발표한 것. 약 1600억원 규모인 전체 전통주 시장의 5%가 넘는 금액이다.

대동여주도를 세운 이지민(45) 대표는 손꼽히는 전통주 전문가. 와인 홍보·마케팅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다 운명처럼 전통주에 빠졌고, 그 맛과 매력을 알리고자 2014년 대동여주도를 설립했다. 당시만 해도 젊은 층에게 외면당하던 전통주를 만화·릴레이 챌린지 등 색다르게 소개하며 대중화에 앞장섰다. 10년간 전통주 2000종을 세상에 알렸고, 양조장 300곳을 컨설팅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평창 동계올림픽의 세계 정상 건배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만찬주 등 굵직한 국가 행사에 등장한 전통주를 도맡아 추천했다.

이지민 대표를 서울 잠원동 대동여주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벽을 따라 늘어선 선반과 업소용 냉장고에 모양·색·크기가 제각각인 전통주 수천 병이 진열돼 있었다. “전국 1600여 양조장에서 ‘우리 술을 맛보고 평가해 달라’며 매달 수십 종을 보내요. 지난 10년간 맛본 전통주가 적게 잡아도 5000종은 되겠네요.” 중국을 대표하는 술 마오타이는 한때 삼성전자 시총을 넘겼다. 이 대표는 “이번에 투자받은 100억원으로 한국 대표 국주(國酒)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호랑이·토끼·용띠 와인으로 히트

그는 ‘덕업일치’를 실현한 행운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먹어보라”며 건네준 맥주로 처음 영접한 ‘주(酒)님’과 사랑에 빠져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아버지가 애주가셨나 봅니다.

“밥 대신 막걸리를 드셨어요. 약주와 담금주를 집에서 직접 빚으셨고요. 온 집안이 술을 좋아해요. 남편, 시어머니 등 시가도(웃음).”

-남편의 술 실력을 테스트하고 결혼을 결심했나요?

“연애 시절 남편이 취하면 잠이 드는 것 말고는 실수를 하지 않더라고요. 술 마시고 사고는 치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저는 한창 때는 소폭 30~40잔도 거뜬했고 어떤 술자리건 ‘최후의 생존자’였답니다.”

-처음에는 와인을 홍보·마케팅했는데.

“2004년 홍보 대행사에 입사하고 2년 뒤 와인 수입사에서 비딩이 들어왔어요. 술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건 꼭 따야겠다’ 싶었지요. 와인을 하나도 모르면서 정말 미친 듯이 PT를 했어요. 와인 수입사 임원이 ‘저런 열정이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며 저희 회사를 낙점했어요.”

-와인 홍보해 보니 어떻던가요.

“천직이구나 싶더라고요. 술을 위해 뛰고 이야기하고 가치를 알리는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첫 히트작은 칠레 와인 ‘1865′였는데.

“와인 라벨에 새겨진 1865가 설립 연도라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팔까 고민하는데, 와인 수입사 골프장 담당 영업 사원이 ‘골프 치러 온 손님들이 ‘18홀 65타 치자’고 킥킥거리며 마시더라’는 거예요. 그걸 포인트로 잡아 2년 만에 100만병을 팔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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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상사 트윈와인에서 2011년 내놓은 '토끼 와인' 라벨./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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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진 트윈와인 창립 멤버로 스카우트돼 ‘띠 와인’으로 대박을 냈습니다.

“고(故) 구본무 회장님이 ‘와인을 대중화하라’는 미션을 주셨어요. 당시에 와인 하면 무조건 스테이크, 파스타 같은 양식을 곁들이는 거였어요. 대중화하려면 한식과 함께 마시도록 해야겠더라고요. 고민하다 만화 ‘식객’을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허영만 화백을 만나러 갔죠. 알고 보니 구 회장님과 절친인 거예요. 소고기·돼지·낙지 등 이런저런 토종 한식을 어울리는 와인 라벨에 그려넣어 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런데 음식 대신 호랑이가 라벨에 들어갔네요.

“마침 2010년 호랑이해가 다가오고 있었어요. 연말연시에 맞춰 특별한 걸 해보고 싶어서 ‘화백님, 호랑이 두 마리만 그려주세요’ 했어요. 회사에서는 반대가 심했지요. 그런데 이게 히트를 치면서 준비한 물량을 모두 팔았습니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내년 띠 와인을 당장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2011년 토끼 와인, 2012년 용 와인을 내놨죠.

“구 회장님이 토끼띠셨어요. 회장님을 모티브로 허 화백이 토끼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LG전자 휴대전화 ‘사이언폰’으로 음악을 듣는 모습을 그렸어요. 구 회장님의 덕목이 경청이기도 했지요. CEO(최고경영자)들이 연말연시 선물로 토끼 와인을 엄청나게 구입했어요. 비교적 가격이 높은 10만원대 와인이었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팔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경험이 나중에 전통주를 알릴 때도 도움이 됐고요.”

그런데 LG는 와인 사업을 갑자기 접었다. 2012년 정부가 주류 수입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발표 직전까지 아무도 몰랐어요. 회식 날이라 단장하고 출근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새벽 2시까지 펑펑 울었어요. 그때는 일이 제 전부였거든요.”

◇낡고 칙칙한 전통주에 새 옷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이 대표는 모 기업 커피 사업부에서 잠시 일하다 홍보 대행사를 차렸다. 그러고 운명처럼 전통주를 만났다.

-그때까지 전통주는 관심 없었나요.

“와인 수입사에서 만난 동료가 전통주 양조장에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관심은커녕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죠. 그런데 계속 전화가 오는 거예요. 2014년 5월 이강주, 문배주, 송화백일주, 이렇게 전통주 양조장 3군데를 1박 2일로 돌았어요.”

-이건 되겠다 감이 오던가요.

“접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느낌이었어요. 와인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술맛이 너무 좋더라고요. 우리 음식과도 어우러지니 문화 충격을 받았지요. 이런 술이 있었네, 왜 몰랐을까. 한 달 고민해서 대동여지도에서 착안해 ‘대동여주(酒)도’라는 이름을 짓고 콘텐츠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첫 콘텐츠가 뭐였나요.

“그때까지 전통주 하면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 칙칙한 옛날 이야기밖에 없었어요. 완전히 다른 이미지, 세련된 술로 보여줘야겠다 싶었어요. ‘전통주를 좋아하는 여성이 전통주에 대해 쉽게 이야기해 준다’는 콘셉트를 잡고 만화로 풀었습니다.”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나요.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술도 있었어?’ 하는 반응이 많았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어요. 생산자들도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통주를 소개하니 굉장히 고마워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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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소개 만화 콘텐츠. /대동여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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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좀 벌었나요.

“전혀요. 정말 무식하고 용감하게 한 거죠. 그러다가 2017년에 농림부 일을 받아서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식품연구원에서 개발한 술 발효제 보급 사업, 양조장 컨설팅, 전통주 포털사이트 구축, 페스티벌 등 다양한 정부 사업을 대행했습니다. 전통주 양조장에 이런 게 필요하겠구나, 그래야 우리나라 술 산업에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서서히 깨달아갔어요.”

-국가 행사에서 전통주 자문을 도맡다시피 했는데.

“평창 동계올림픽 정상 건배주, 세계지식포럼 만찬주, 청와대 명절 선물 등으로 어떤 전통주가 좋을지 추천해 드렸어요. 돈 받고 한 일도 아니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하게 됐지요. 돌아보면 저에게 좋은 경험과 자산이 된 것 같아요.”

-가장 화제가 된 건 뭐였나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 만찬주죠.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었잖아요. 밤에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VIP용 술이 급하게 필요하다. 너무너무 까탈스러운 외국인이다. 누룩 향이 나면 안 되고 화이트와인 같아야 한다. 그런데 의미도 있고 스토리도 좋아야 한다.’ 세 가지를 골라 추천했는데 며칠 뒤 뉴스를 보고 그 VIP의 정체를 알았지요.”

-그때 낙점받은 술이 뭐였나요.

“‘풍정사계 춘’이었어요.”

풍정사계 춘은 충북 술도가 ‘화양’이 빚는 술이다. 춘하추동 네 제품으로 구성되는데 춘은 약주, 하는 과하주, 추는 막걸리, 동은 증류주다. 춘은 멥쌀, 찹쌀, 물, 직접 띄운 누룩을 쓴다. 첨가물은 쓰지 않는다. 2017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만찬주로 뽑힌 뒤 품귀 현상이 벌어졌고, 그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 5명이 전통주를 시음·평가하는 ‘테이스팅 리포트’도 영향력이 크지요.

“양조장들이 자기들 술이 어떤 위치에 있고 뭘 개선해야 할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생 양조장들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해요. 유통업체 MD들과 소비자들에게도 판단 기준이 되지요.”

-전통주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2022년 전체 전통주시장이 1629억원이고, 경기 영향으로 지난해 이어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이어갈 듯해요. 2017년 정부가 전통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게 전환점이었어요. 전통주를 알리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어디서 사요?’였거든요. 온라인으로 판로가 조금씩 개척되고, 시장이 커지다가 코로나 때 급성장했죠. 혼술 문화가 정착하고 기호가 다변화하면서 새로운 술을 찾을 때 전통주가 대안으로 뜬 거예요.”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까요.

“2027년까지 1조원 규모로 성장할 거라고 봅니다. 평균 성장률을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예요. 정부에서는 2조원으로 훨씬 크게 전망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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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회(가운데) 신아주그룹 부회장와 이지민(오른쪽)·이세민 대동여주도 공동대표. /대동여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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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 통할 대표 전통주

대동여주도에 100억을 투자하기로 한 신아주그룹 문경회 부회장은 “해외 주류에 비해 저평가돼 있지만 뛰어난 전통주가 많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며 “잠재력이 높은 양조장을 발굴해 우량 브랜드로 키우고 대한민국 국주를 만들겠다는 대동여주도의 비전에 동참하고자 한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어떻게 이런 거액을 투자받게 됐나요.

“문 부회장을 3년 전 처음 만났어요. 여러 차례 함께 전통주를 맛봤죠. 와인이나 위스키와 붙어도 경쟁력이 있으니, 정말 좋은 브랜드로 키워 세계로 내보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대한민국 대표 술, 과연 가능할까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는 힘들겠지만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봐요.”

-국주의 조건은 뭡니까.

“맛, 향, 색, 투명성 등 외관이라는 술의 기본을 우선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술과 생산자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 매력적인 이름(브랜드)이 어우러지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시설부터 브랜딩, 마케팅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청주·약주·약주·증류주 등 생각하는 주종이 있나요.

“주종을 정해둔 건 아니에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술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거죠.”

-중국의 마오타이처럼 국력이 받쳐줘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세계 위스키 시장을 휩쓸고 있는 대만 ‘카발란’을 보세요. 나라 규모와 술의 품질이 꼭 비례하지는 않아요. 다만 긴 호흡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흥분과 기대로 이 대표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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