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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민 문제의 해답은 더 많은 연대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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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9월12일(현지시각)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에서 여러 건물에 대한 폭탄 위협이 발생한 가운데 경찰관들이 시청 건물 밖에 서 있다. 스프링필드/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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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얼마 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트럼프는 상대편 해리스와의 첫 티브이 토론회에서 ‘오하이오 스프링필드에 사는 아이티인들이 이웃의 고양이를 훔쳐 먹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진실이 아니다. 근거로 제시된 소셜미디어 영상은 대부분 오인되거나, 조작되거나, 물증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스프링필드시에서도 즉각 트럼프의 주장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공개 발언치고는 근거가 너무 빈약했는데, 사실 주장이 맞고 틀리고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



지난 3년간 스프링필드에선 아이티 출신 이민자가 급격히 늘었다. 아이티에서 자연재해, 경제 부진, 정치 불안정이 계속되며 미국 정부가 아이티 이민자에게 임시보호 지위를 대거 발급해줬다. 쇠퇴하던 공업도시 스프링필드는 대규모 공장을 다시 유치하며 마침 일손이 필요했고, 정착지를 찾던 아이티 이민자들에게 인기 있는 목적지가 되었다. 이민자 유입으로 일자리는 채워졌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인구가 늘면서 주거비가 오르고 의료·교육·복지 서비스가 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원의 부족은 이내 문화의 충돌로 이어졌다. 지난해 아이티인이 낸 아동 사망 교통사고를 계기로 갈등이 폭발했다. 고양이 식용 논란은 급격한 이민자 유입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하나의 사례였다.



6700만명이 본 대선 토론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토론회 이후 미국 전역의 아이티인들은 범죄의 표적이 됐고 소셜미디어에는 그들을 향한 혐오가 넘쳐났다. 스프링필드에서만 33건의 폭탄 테러 위협이 발생하며 학교, 병원, 심지어 시의회에서까지 수색과 대피가 이뤄졌다. 참다못한 아이티 이민자 단체는 트럼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한번 부추겨진 혐오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짓에 기반한 혐오가 이민자의 삶을 위협하는 건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리버풀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의 범인이 무슬림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극우·인종주의 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반이민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이들은 이슬람 사원에 불을 지르고 난민 신청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부수었으며 영국 전역의 이민센터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반이민 정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근 몇년간 유럽의 주요 선거에서 이민자, 난민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뤄졌고 극우 정당이 급격히 세를 확장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난주 유럽 통합을 연구하는 체코 연구자로부터 “2015년 시리아 난민 위기 이후 유럽에서는 이민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해졌다. 이민 이슈는 이제 감정의 문제가 됐다”라는 얘길 들었다. 본능에 가까운 외부인 배제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충돌, 여기 더해진 한정된 자원을 향한 경쟁은 이민자의 매끄러운 통합을 방해한다. 감정의 문제를 건드리면 손쉽게 표를 얻는다는 점을 체득한 정치인의 선동까지 가세하며, 이민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난제가 돼버렸다.



해답을 찾긴 어렵지만 오답을 골라내는 건 가능하다.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며 혐오를 부추기고 이민자를 쫓아내는 건 명백한 오답이다. 이주라는 현상은 종종 이주하는 사람과 이주를 받는 사회의 이해관계가 맞기 때문에 일어난다. 스프링필드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이민 노동력이 꼭 필요했다. 일할 사람이 줄고 있는 우리나라도 같은 처지다. 갈등을 조장하고 국경을 닫는 대신, 이민자와 내국인이 서로 보완하는 영역을 제시하고, 인구 유입으로 인한 피해 계층을 세심히 지원하며,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이민자와 수용국 모두에 좋은 길이다.



이 ‘상호이익’의 수호는 시민들의 연대로만 가능해진다. 공화당 소속 오하이오주지사는 자신이 지지하는 트럼프에 반해 아이티 이민자를 옹호해주었다. 아이티인이 낸 교통사고 희생 아동의 아버지는 혐오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영국에서는 수만명의 시민이 반이민 폭력시위에 맞서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유례없는 대규모 맞불시위로 인해 이민센터를 공격하려던 인종주의 단체의 계획은 저지되었다. 사회과학자로서 나는 사실을 바로잡고 연대의 이익을 계량화하는 역할을 해야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답은 더 많은 환대, 더 많은 포용, 더 많은 연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민이 ‘팩트’가 아닌 ‘감정’의 문제가 됐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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