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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소탐대실인 이유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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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업무 투입 직전인 지난 8월27일 국회 토론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들의 급여를 최저임금 아래로 낮춰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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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성 | 작가



한국의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총 25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그중 4분의 1 수준인 약 60만명에 불과하다. 변호사나 회계사, 의사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 중 현재 실제로 일하고 있는 사람의 비중을 따져보면 요양보호사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이유는 경제적 처우의 차이다. 경제적으로 처우가 낮으니, 당연히 시간을 들여 취득한 자격증이 있다 할지라도 이를 활용해 경제활동을 수행할 유인이 없는 것이다.



전반적인 돌봄 서비스의 처우는 이렇게 낮다. 이 때문에 한국은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돌봄 서비스 인력난에 시달려왔다. 무릇 정상적인 사회라면 처우 개선에 자원을 투입해 서비스 품질 향상을 도모해야 하겠지만, 통화정책의 주무기관인 한국은행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를 돌파하기를 원한 듯하다. 지난 3월 고용허가제를 확대해 외국 인력을 수입하고, 이들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골자의 보고서를 낸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선진국은 동일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궁색한 비교는 덤이다.



한국은행의 해당 보고서는 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의 지리적 고립도 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마저도 도외시하고 작성된, 통화정책 주무기관이 발간한 보고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각각 중국 본토와 말레이시아와 연결되어 있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국경 근처에 사는 외국인 등의 통근이 가능하다. 또한 홍콩은 ‘고용인’이 돌봄노동자에게 적정 수준 이상의 주거 공간을 제공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홍콩 등지에서 돌봄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은 단순한 임금 그 이상인 것이 현실이다.



한편 서울시는 한국은행의 이 같은 보고서를 냉큼 수용해, 필리핀 가사도우미 100명을 고용허가제로 국내에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개시했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화는 현재도 최저임금법 4조에 따라 가능하지만 이는 시행하지 않았고, 그 대신 딱 정확하게 최저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마저도 정부가 아웃소싱한 업체들의 유동성 문제로 인해 첫번째로 지급되어야 하는 교육수당조차 제때 지급이 되지 못했으며, 시범사업 보름 만에 가사관리사 두명이 이탈해 잠적하는 문제가 발생하고야 말았다.



실제로 한국과 유사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기능실습생’이라는 제도하에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계속 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낮은 경제적 처우와 차별 대우 등에 불만을 품고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 이 역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23년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 기능실습생 50만9천명 중 무려 2%에 달하는 9753명이 이탈해 잠적했으며, 2019년부터 헤아리면 무려 4만명 이상이 이탈했다고 한다. 한해에만 약 1만명의 소재 불명 미등록 외국인이 생기는 꼴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기능실습생 입국과 기업과의 인력 중개를 돕는 중개업체들은 애당초 기능실습생들이 이탈해 잠적할 것을 가정하고 인력이 공급되는 현지 중개업체와 손해배상 계약을 따로 맺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하겠지만 현지 중개업체는 이러한 위험비용을 일본으로 일하러 가고자 하는 자국의 기능실습생 후보자들에게 모두 전가한다. 이 비용이 전가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결국 어지간한 처우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탈출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직장을 이탈해 잠적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 일본 외국인 노동자 도입 제도의 현실이다.



특히 서비스의 품질과 서비스 제공자의 처우가 상당히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돌봄 서비스의 경우 앞서 언급한 악순환을 방지하려면 높은 경제적 처우가 필수다. 하지만 이를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의 도입으로 제어하려 한다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지금도 낮은 경제적 처우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내국인 돌봄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돌봄노동자의 처우는 인력 부족 문제와 직결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재원 마련이라는 방법 대신 외국인 노동자의 수입이라는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가히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길을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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