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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윤석열의 가게무샤’ 한덕수 총리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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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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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 전국부장





“그건 가짜뉴스입니다. 가짜뉴스예요. 죽어 나가요? 어디에 죽어 나갑니까?”



한덕수 국무총리는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한 야당 의원이 ‘응급실 뺑뺑이’를 거론하면서 “국민들이 죽어 나가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총리의 언성이 높아졌다.



유감스럽게도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어 나간’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난여름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쓴 기사가 ‘폭염’과 ‘응급실 뺑뺑이’다. 7월18일 전북 익산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로 발목이 잘리고 머리를 크게 다친 70대 운전자가 병원 4곳을 전전하다 80분 만에 숨졌다. 같은 달 31일에는 경남 김해의 한 공사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콘크리트 기둥에 깔려 크게 다쳤지만 병원 10곳에서 이송을 거부해 끝내 사망했다. 8월20일 충남 천안에서 60대 여성이 온열질환으로 쓰러졌지만 구급대원들이 병원 19곳에 전화를 돌리는 사이 1시간 만에 숨졌고, 9월5일에는 심정지 상태의 조선대 학생이 바로 코앞에 있는 조선대학교병원 응급실 수용을 거부당한 뒤 결국 사망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충청도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환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한 총리 자신도 이런 말을 했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해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의료대란 초기인 지난 4월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것도 ‘가짜뉴스’다.



한 총리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무려 5개 정권에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정책기획·경제수석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고,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국무총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서로 다른 두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인물은 이승만 정부와 장면 내각의 장면,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백두진, 박정희-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김영삼-노무현 정부의 고건, 그리고 한덕수 총리까지 5명뿐이다.



윤 대통령의 신임도 두터운 듯하다. 임기 절반이 다 돼가도록 윤석열 정부의 총리는 한덕수 한 사람뿐이다. 단일 재임 기준으로 역대 총리 48명(중복 포함) 중 여섯번째로 재직 일수가 길다. 석달만 채우면 9대 정일권, 11대 김종필, 12대 최규하에 이어 역대 4위로 올라선다.



한덕수 총리가 ‘처세의 달인’이 된 비결은 온유함과 유순함 덕분이다. 그러던 그가 달라졌다. 지난달 9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그 순하던 한덕수 총리가 요즘 대통령이 싸우라고 하니까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저돌적으로 반항을 하고 있다”며 “제발 옛날의 한덕수로 돌아가라”고 했다. 조선일보도 “평소 언성을 높이지 않기로 유명한 한 총리가 최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다”며 그의 변신을 주목했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정부 총리 시절엔 한건도 없던 ‘논란’이 윤석열 정부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절대로 아니다”라고 답하고, “서울 택시비가 1천원”이라는 황당한 발언은 그저 애교 수준이다. 제주 4·3 추념식에서 묵념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고, 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맨손으로 분향한 기행은 대통령 부부를 능가한다. 말은 더욱 거칠어졌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에 버젓이 나와 있는 대통령 전용 병원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며 야당 의원에게 호통치는가 하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돌덩이’로 비유하고도 이를 따지는 야당 의원에게 되레 역정을 냈다.



그는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 “대인이다. 제일 개혁적인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거부권을 635번 행사했다”며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남발을 옹호했다. “저는 계속해서 대통령께 재의 요구를 하시라고 건의할 생각”이라고까지 했다.



이쯤에서 주군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짜 주군’ 노릇을 한 중세 일본의 ‘가게무샤’가 떠오른다. 대통령 대신 여론의 뭇매를 맞거나 허수아비 노릇을 자처하는 ‘윤석열의 가게무샤’. 75살 한덕수 총리의 화려한 변신이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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