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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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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는 역사다] 윤석양 (1966~)



1990년 9월에 탈영한 윤석양, 10월4일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덕분에 우리는 큰 걱정 하나를 덜었다. 당장에라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걱정 말이다.



1980년대에 윤석양은 운동권 학생이었다. 1990년에 입대했는데,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보안사는 군의 정보기관이었다. 윤석양 이병을 ‘한강에 던져버리겠다’고 협박. 윤석양은 동료 운동권 학생들 이름을 댔고, 체포하는 일도 거들어야 했다.



윤석양은 보안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80일 동안, 보안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파악. 1990년 9월에 윤석양은 보안사의 기밀 파일을 들고 빠져나왔다. 목숨을 건 탈영이었다. 숨어 다니며 한겨레신문과 접촉했다. 10월4일에 폭로 기자회견을 했다.



보안사가 꾸준히 민간인을 감시했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군대가 군인 아닌 사람을 몰래 조사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부가 아니다. 민간인 사찰은 ‘청명계획’이라는 친위 쿠데타 계획의 일부였다.



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군에 맞서는 민중 운동이 일어나면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 보안사는 김대중, 노무현, 문익환, 김영삼 등 민주화운동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언제 무슨 일을 하고 누구와 만났는지 시시콜콜하게 조사했다. 집의 담장 높이와 예상 도주로와 은신처까지 기록. 쿠데타를 일으키면 먼저 이 사람들을 체포할 셈이었던 것.



윤석양은 도피 생활을 하다가 체포되어 두해 동안 옥살이를 했다. 2011년에는 윤석양 사건을 다룬 영화 ‘모비딕’이 개봉. 2020년에는 생활인 윤석양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으로 당선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폭로 직후, 노태우 정권은 부랴부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여론을 돌리기 위해 그랬다는 뒷말이 나왔다.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때 기무사는 계엄령 문건을 작성했다. 한국 사회에서 친위 쿠데타의 유혹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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