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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딥페이크’가 새롭지 않았던 이유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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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 대학로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 만든 놈, 판 놈, 본 놈 모조리 처벌하라’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채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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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채운 | 이슈팀 기자



S#1. “골대 못 맞히는 사람이 ○○○하고 ○○하는 거다!”



중학교 축구부 시절, 슈팅 훈련을 하던 중 나온 누군가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언급된 이름은 학교 여학생 중 한명. 그 뒤로 누군가 골대를 못 맞힐 때마다 그 여학생과 관련된 낯 뜨거운 ‘드립’(농담)이 이어졌다.



S#2. 군 생활 내내 전승되는 어떤 ‘리스트’가 있었다. 예쁘기로 유명한 전국 여군들의 명단이었다. 병사들은 심심할 때면 그 리스트의 이름들을 공군 인트라넷에서 검색하며 ‘외모 품평회’를 열었다. 전국의 공군 부대 장병들이 ‘대대손손’ 그래 왔을 것이라는 건 전역 3년 뒤 한 기사를 보고 깨달았다. 한 공군 비행단 병사들이 컴퓨터 안에 ‘계집 파일’을 만들어놓고, 전국 여군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매주 업데이트하며 집단 성희롱했다는 한겨레 단독 보도였다.



지난 8월 같은 이슈팀 동기인 고나린 기자가 자신의 다음날 단독 보도에 대해 설명했을 때, 나는 위의 두 장면을 떠올렸다. 고 기자는 딥페이크(불법합성) 성범죄물을 만드는 텔레그램 대화방 수십개를 찾아내 잠입했다. 단순한 검색만으로 10초 만에 입장이 가능했다. 그곳에서 남성들(추정)은 전국 지역, 대학, 심지어 중고교별로 지인의 신상정보와 사진을 올리고 함께 불법 합성물을 만들었다.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구나.



대한민국에서 10대를 보낸 남성으로서, 딥페이크 불법합성물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신종 성범죄’가 아니었다. 그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해온 ‘잘못된 놀이문화’의 한 자락일 뿐이었다. 올해 경찰에 붙잡힌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의자의 84%가 10대 청소년이라는 통계에 놀라지 않은 이유다.



과연 내가 지금 10대였다면 텔레그램 ‘불법 합성 인공지능 봇’에 여학생들의 사진을 절대 넣지 않았으리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또는 ‘그저 장난일 뿐’이라며 방관하는 수많은 학생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이 유구한 ‘남성 연대’의 역사 한구석에는 수많은 ‘장면들’을 그저 방관했던 나 역시 함께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그게 ‘잘못’이라고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게 잘못이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어른도, 선생님도 아무도 없었다. 성교육이라고는 1년에 한두번 할까 말까, 그마저도 알맹이가 하나도 없어 부모가 ‘알아서’ 가르치거나, 본인이 ‘독학’해야 하는 게 이 나라의 성교육이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방 22만명, 엔(n)번방 26만명…. 그 숫자가 맞냐 틀리냐를 따지기보다 중요한 건, 이미 ‘문화’로 자리 잡은 이 거대한 구조를 하나씩 바꿔나가는 데 있을 터이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공교육 현장에서 성교육은 여전히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는’ 그 무엇이다. 어쩌면 국영수보다 더 절박한 교육임에도, 그저 일회성 특강에 그치다 보니 강사들의 고충도 크다고 한다.



언제까지 청년들이 성범죄와 성착취를, 그에 맞선 싸움과 연대를 ‘독학’하도록 내버려둘 건가. 성평등 관점의 성교육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도록 하는 민주주의 교육이다. 이번 일로 성범죄 처벌에 관한 법·제도뿐 아니라, 교육 현장을 어떻게 뜯어고칠 것인지 치열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한다.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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