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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동물은 삶의 주체이자 개별 존재”…동물단체 ‘보금자리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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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월4일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국내 동물단체 4곳이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금자리 선언문’을 발표했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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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국내 동물단체들이 ‘보금자리 선언문’을 발표했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해방물결, 새벽이 생추어리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더 나은 인간-동물관계를 위한 보금자리 선언대회’를 열고 “‘거주동물’은 고유한 삶의 주체이자 개별적 존재이며 이들의 욕구와 선호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던 반달가슴곰, 개농장과 도살장에서 구조된 염소와 닭, 도살 위기에 놓였던 홀스타인 종 얼룩소, 축산업과 실험실에서 살아남은 돼지들을 보살피고 있다. 단체들은 강원 화천, 인제 등 전국 곳곳에서 보호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동물을 ‘거주동물’로, 시설을 ‘보금자리’(생크추어리, Sanctuary)라고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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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들은 각각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던 반달가슴곰, 개농장과 도살장에서 구조된 염소와 닭, 도살 위기에 놓였던 홀스타인 종 얼룩소, 축산업과 실험실에서 살아남은 돼지들을 보살피고 있다. 사진은 ‘달뜨는보금자리’에서 생활 중인 홀스타인 종 소들. 동물해방물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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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크추어리란 원래 피난처 혹은 안식처라는 뜻으로 갈 곳 없는 동물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공간이나 시설을 말한다. 세계 생크추어리 연합(The Global Federation of Animal Sanctuaries)의 설명을 보면, 이처럼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생크추어리는 최소 200곳이다. 단체들은 올해 초부터 주기적인 모임을 이어오며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 막막함을 공유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생소한 생크추어리를 제대로 소개하고 이를 알리고자 선언문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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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강원도 화천에서 보호 중인 사육곰의 모습.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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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행동 카라가 ‘팜 생추어리’에서 보호 중인 미니 돼지.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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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선언문’은 생크추어리를 “공장식 축산, 동물원 등 인간의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 동물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보금자리는 착취 대상으로만 여겨온 동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고 상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물들은 당장의 폭력에서 벗어났지만, 구조적인 폭력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다”며 “폭력적인 사회 속에서 보금자리도 절대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단체들은 생크추어리가 기존의 ‘인간-동물 관계’를 재편할 수 있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재 운영 중인) 보금자리들이 보여주듯,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착취 관계를 전환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며 “(현재의) 보금자리는 종착지가 아닌 ‘여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을 인간을 위한 축산물, 전시·실험동물로만 대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언문에는 더 나은 인간-동물 관계로 가기 위한 구체적 다짐이 담겼다. 동물을 △삶의 주체로 존중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며 △음식·수면·휴식·배설 등 개체별 욕구와 선호가 반영된 돌봄을 제공하며 △외부 위험으로부터의 보호, 신체적·정서적 건강을 위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하고, 동물에게 △시혜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에 맞는 공간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생크추어리가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이고 제한된 공간이라는 한계점 또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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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4일 ‘세계 동물의 날’을 맞아 국내 동물단체 4곳이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금자리 선언문’을 발표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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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처음엔 4개 단체 모두 동물에 대한 철학이 달라 선언문을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하며 예상치 못한 연대를 쌓아갈 수 있었다”며 “앞으로 더 풍부하고 단단하게 쌓일 연대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은 “보금자리는 구조된 동물이 얼마나 개성 넘치고 다채로운지, 독립적이고 존엄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면서 “보금자리는 곧 우리가 동물착취 산업의 잔인함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보금자리 선언문 전문



보금자리(Sanctuary)는 원래 '피난처' 혹은 '안식처'라는 뜻으로 갈 곳 없는 동물을 보호하는 공간이나 시설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향으로 가축화된 종이나 이미 인간의 사육에 익숙해진 야생동물은 인간의 돌봄이 필요하다. 보금자리는 공장식 축산, 동물원 등 인간의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 동물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동물의 권리와 복지를 고민하고, 더 나은 인간-동물 관계를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삶의 주체



우리는 거주동물을 삶의 주체로서 존중한다. 착취적인 환경으로부터 그들의 여생을 보호하며, 나아가 거주동물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만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나, 자율성



우리는 거주동물이 가능한 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이는 거주동물의 '자연스러운 삶'을 기준으로 한다.



하나, 욕구와 선호



우리는 거주동물에게 음식, 수면과 휴식, 배설 등 생활 전반에 관하여 개체별 욕구와 선호가 반영된 형태의 돌봄을 제공하도록 노력한다.



하나, 건강과 안전



우리는 거주동물을 예방적 살처분 등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신체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건강 검진과 백신 접종, 자체 방역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하나, 용어 사용



우리는 거주동물에 대한 시혜적 언어를 지양하고, 인간의 언어에 서린 권리침해적 성격을 감추지 않는다. 우리의 용어 사용은 폭력적 인간-동물관계를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쪽을 향한다.



하나, 사회적 상호작용



우리는 거주동물이 혼자 있거나 무리로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공간 분리 등의 적절한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거주동물 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위해 노력한다.



거주동물은 고유한 삶의 주체로서 욕구와 선호를 지닌 개별적 존재이며 이들의 욕구와 선호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인간 역시 한 종의 동물임을 인지하며, 거주동물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데 기꺼이 동의한다. 동시에,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선언은 거주동물의 이상적 공간을 추구하지만, 보금자리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구획한 인위적이고 제한된 공간이다. 동물을 감금하는 구조, 제한적 자원, 다양한 가치의 충돌 등 우리는 매일 현실에서 타협해야 하는 일과 마주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력해지지 않고, 계속 고민하며, 거주동물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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