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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격무 시켜놓고 감시까지 하냐?"... 청장 탄핵 얘기까지 나온 '흉흉한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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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순찰대로 인력 줄었는데 업무 과중
"젊은 경찰관들 못 해먹겠다 퇴직 준비"
한국일보

경찰 로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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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 간부가 자기 실명을 걸고 '경찰청장 탄핵을 요청한다'는 청원 글을 올리자, 치안 일선 업무를 담당하던 경찰관들이 동요하고 있다. 기동순찰대 등 새 조직이 생기며 사람이 빠져나간 틈을 기존 인력이 빠듯하게 메우는 상황에서, 경찰 지휘부가 업무 통제로 고삐를 죄며 사기를 깎아 먹고 있다는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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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경찰과 시민을 죽이는 경찰청장 지시에 대한 탄핵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2일 올라왔다. 작성자는 27년 차 현직 경찰인 경남 김해중부경찰서 신어지구대 소속 김건표 경감. 그는 "최근 연이은 경찰관들의 죽음에 대책을 내놓아야 할 청장은 오히려 죽음으로 내모는 지시를 강행하고 있다"며 "경찰청장의 탄핵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탄핵 청원까지 나오게 된 건 경찰청이 지난달 26일부터 시행한 '지역관서 근무 감독·관리체계 개선 대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경남 하동군에서 40대 여성이 순찰차에 탄 후 3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되자 대책을 내놨다. 2시간마다 순찰차 위치와 정차 사유를 기록하고 무전으로 위치와 업무 상태를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본보가 4일 만난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도 비슷한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의 한 파출소 A경감은 "야간에 다른 일이 있어 순찰차가 멈추면 왜 차가 안 움직였는지에 대한 사유를 써내야 한다"며 "우린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위에선 놀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다른 지구대 B경감은 "범죄예방과가 생긴 뒤 탄력순찰할 곳이 달에 세 군데 정도씩 늘어 지금 100곳이 넘는데 문책당할까 순찰만 돌고 필요한 신고 현장을 못 챙길 때도 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지난해 4월 29일 새벽 3시 서울 마포구의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취객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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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관들은 인력 부족이 나날이 심해지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경기도 지구대에서 일하는 C경장은 "우리 팀 인원이 10명도 안 되는데 관할 인구가 4만 명이 넘어 처리해야 할 신고가 수십 건"이라며 "지구대·파출소경찰관들은 밥도 30분 이상 못 먹고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는데, 잠깐 쉬는 시간마저 순찰 돌라고 감시하겠다고 하니 반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경감은 "기동순찰대 차출로 112 신고 대응할 인력이 줄었는데 업무는 더 많아졌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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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과중으로 인한 자살·순직 사건이 계속 이어지자, 경찰 내부에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관기 전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이전까지만 해도 지구대 팀장이 근무 일지를 짜면 지구대장이 검토하고 끝났지만, 지금은 지구대장이 범죄예방과장한테 보고하고, 또 서장한테, 지방청에 보고하는 상황"이라며 "사건 볼 시간에 감시를 하고 있으니 모두에게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그는 "4, 5년 차 젊은 경찰관들이 '못 해먹겠다'며 퇴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생각했던 경찰관의 일과 다르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고 전했다.

구성원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일방적 지시 하달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지구대 D경위는 "유통기한 1, 2년짜리 높은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새 대책을 마련하면서 없애지는 않는다"며 "실험용 쥐가 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민 전 위원장은 "지난달 경찰청이 발표한 과로사 대책에도 직협과 논의는 전혀 없었다"며 "청장은 일방통행식으로 대책을 만들고 현장 의견 수렴은 전혀 안 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문지수 기자 door@hankookilbo.com
이건희 기자 thisi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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