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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도시Z, 왜 시골에 가나…전문가가 바라보는 ‘촌캉스 열풍’[창간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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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바지·고무신 차림으로 ‘찰칵’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서 ‘흥미 유발’

어디 가지? 뭐 먹지? 여행도 때론 피곤
오직 ‘쉼’ 위한 선택에서 ‘취향 저격’

실개천 흐르는 옥수수밭 옆…
현실 벗어나 시골집에서 ‘힐링 만끽’

‘요즘 유행’이라는 말에는 힘이 있다. 김미진씨(28)는 지난 7월 강원 삼척으로 여행을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고 이 사실을 새삼 느꼈다. 친구는 “얘들아, 촌캉스(촌+바캉스)가 유행이래!”라며 민박집 후보 리스트를 공유했다. 김씨는 민박집 모습이 10년 전쯤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셨던 경북 경산의 집을 똑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끼이익’ 소리가 나는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에 평상이 있고, 건물 앞에 나무로 된 마루가 깔린 전형적인 시골 독채들이 숙박업소로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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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옥씨가 경기 가평에서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한옥 독채 숙박 업소 전경. 이곳은 박주연씨(가명)가 지난 7월 촌캉스로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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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민박집만 들이밀었으면 거절했을 수도 있어요.” 김씨가 말했다. 대학 시절 농활(농촌활동)도 ‘아는 풍경’이란 생각에 가지 않았던 그였지만, 이번엔 의외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한 시골집이지만 친구들끼리 시골집을 방문해 어르신들이 몸뻬 바지라고 부르는 일바지에 밀짚모자, 고무신 차림으로 삼삼오오 찍어 올린 사진들이 퍽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런 콘셉트 사진을 찍으며 놀 수 있겠구나’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보는 시골 풍경은 또 다르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씨가 촌캉스를 꽤 괜찮은 여행으로 고려한 이유다.

복고(retro)를 새롭게(new) 해석하는 뉴트로(New-tro) 콘텐츠는 수년째 분야를 막론하고 안정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올여름 2030세대의 여행 트렌드로 꼽힌 ‘촌캉스’ 또한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던 농어촌의 생활 풍경을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뉴트로’로 분류할 수 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유행한 ‘Y2K 패션’과 ‘뉴잭스윙’ 등 과거 음악 장르가 다시 떠오르고 약과 등 전통 간식이 인기를 끄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을 떠난 여행지에서도 ‘옛것’을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청년들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숙박업주·청년 문화 전문가에게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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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씨(가명)와 친구들이 지난 7월 경기 가평의 한옥펜션 마당 테이블에 차린 음식 너머로 옥수수밭과 야산이 펼쳐져 있다. 박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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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과 ‘안전감’

촌캉스는 올해 국내 여행 유행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KPR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는 ‘2024년 여름 국내 여행 트렌드’에서 ‘경험(테마관광)’, ‘숨겨진(나만의 장소)’ 그리고 ‘로컬(촌캉스)’ 언급량이 지난 1년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23만건의 소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촌캉스와 함께 많이 언급된 단어로는 ‘힐링’ ‘행복’ 등이 꼽혔다. ‘시골 할머니 댁에 온 것 같다’는 수식어도 촌캉스를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말이다.

“저는 추억할 만한 시골집도, 할머니의 푸근함을 경험한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 표현이 좋았어요.” 지난 7월 경기 가평의 한옥 독채로 촌캉스를 다녀온 박주연씨(29·가명)가 말했다. 십년지기 친구들과의 1박2일 여행 장소로 박씨가 고른 숙소는 앞으론 옥수수밭, 옆으론 실개천, 뒤로는 산이 펼쳐진 곳에 있었다. 주변에 마땅한 음식점이나 편의점조차 없는 숙소를 그는 오직 ‘쉼’을 위해 선택했다고 했다.

“보통의 여행은 맛집과 관광지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촌캉스는 그저 다 같이 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씨는 설명했다. 한번 장을 봐서 들어가면 고립될 수밖에 없는 숙소에서 박씨와 친구들이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었다. 근처 개울가에서 발을 좀 담그다가 해가 질 때쯤 고기를 구워 먹고 밤새 대화를 나누는 것.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박씨는 “예상한 대로였다”며 “준비된 자연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게 좋았다”고 했다.

아예 새롭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오는 ‘안전감’과 ‘안정감’은 뉴트로 열풍을 설명하는 열쇳말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로운 도전은 모험과 탐색의 재미를 줄 수 있지만 그만큼의 피로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며 “그에 반해 레트로의 매력은 ‘익숙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가 ‘새로운 맛집을 찾는 여행’에 피로감을 느꼈듯 콘텐츠의 홍수 속에 쌓인 피로감이 뉴트로 콘텐츠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진용 동국대 경영학과 박사는 2022년 서비스마케팅저널에 소비자들이 새롭게 학습해야 하는 정보가 늘어나는 등 ‘디지털 피로감’이 높아질 경우, 오히려 노스탤지어(향수)를 자극해 과거 지향성 제품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높아질 것이란 가설을 세우고 진행한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이 가설은 실험을 통해 매개 효과가 일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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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씨와 친구들이 지난 8월 충남 공주의 한옥펜션 앞에서 여행 기념으로 맞춘 티셔츠를 입고 자신들을 찍고 있다. 이씨 제공


이상적인 관념적 ‘시골’의 재현

더 나아가 뉴트로 콘텐츠는 과거를 단순히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요소를 제거한 채 재생산하기에, 안전한 재미를 담보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촌캉스에서 전원주택 관리의 수고로움은 방문객 몫이 아니다. 마당이나 풍경은 여느 시골집과 같지만, 침실·화장실은 호텔에 가깝게 꾸며놓은 곳도 있다. 박씨는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고 온 기분이라 어색하리만큼 완벽하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김씨는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일의 수고로움을 안다면서도 “촌캉스는 ‘시골’ 하면 생각나는 좋은 점만 취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마당이 있는 주택은 온종일 관리해야 하고, 벌레뿐만 아니라 두더지 같은 야생 동물이 튀어나오기도 하죠.” 김씨가 덧붙였다.

그러니 시골 풍경이 이미 익숙한 이들에게 촌캉스는 오히려 선호도가 떨어지는 여행 선택지일 수 있다. 경북 의성에 사는 김씨의 부모님은 구태여 시골집을 찾아 여행을 간다는 딸의 말에 “본가에 내려오면 되지, 왜?”라며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런 반응은 촌캉스가 장년층보다 농어촌 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경기 가평에서 남편과 함께 한옥 독채를 숙박업소로 운영하는 윤순옥씨(69)도 6년 전 영업을 시작할 때엔 청년들이 주요 고객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씨는 가평 토박이인 남편을 따라 40년 넘게 이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한옥에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잔디를 깎고, 숙소를 정리하고, 농작물을 관리하느라 하루하루가 바쁘지만, 윤씨는 “잘 쉬다 가는 이들이 자식들 같아, 마음이 좋다”고 했다.

윤씨는 청년 투숙객이 3년 전쯤부터 차츰 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의아한 마음도 잠시, 그는 ‘젊은이들이 사회생활 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란 생각에 가닿았다고 했다. 윤씨는 “살기 힘드니,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쉬러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그저 마음 편히 놀다 갈 수 있길 바라며 방을 준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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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래머블’ 공간은 유행을 낳는다

청년들은 시내에서 떨어진 자연 속 숙소를 배경으로 ‘콘셉트 사진·영상’ 등 창의적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대전에 사는 이승희씨(32)는 지난 8월 충남 공주의 한 한옥펜션으로 여행을 떠나며 일부러 낮은 사양의 디지털카메라를 챙겨 갔다. ‘그 시절’ 감성을 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넣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한옥과 자연을 배경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챌린지 영상을 찍었다고 한다.

“SNS의 영향도 촌캉스 인기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 같아요.” 이씨가 말했다. 그는 “벌레도 많고, 호캉스(호텔+바캉스)만큼 깔끔한 환경일 수 없었지만,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촌캉스를 선택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촌캉스 열풍을 짚을 때 ‘새로운 경험’에 대한 관심도 거론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호캉스처럼 세련된 경험을 해왔던 젊은 세대에게 촌캉스 사진들은 촌스럽지만, 오히려 독특해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며 “민박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지만,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성을 갖춘 여행지인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그 어떤 때보다 힐링을 하고 왔다”고 자부했다. 주변에 변변한 가로등도 없는 숙소에서 이씨 일행은 ‘해가 떨어지면 할 것이 없는’ 진정한 밤을 맞이했다고 한다. “동네 할머니·할아버지 주무시는 데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단 생각에, 방 안에서 저희끼리 소곤소곤 얘기를 했다”며 “현실에서 벗어나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1박2일간 조용히 자연을 느끼면서 ‘디지털 디톡스’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씨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여행은 이씨가 촌캉스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며 막을 내렸다.

일상은 금세 되돌아왔다. 그렇지만 여행은 그렇게만 끝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이씨의 SNS 사진을 보고 “요즘 유행이래” “힐링될 것 같지 않아?”라며 저마다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알 것도 같지만 조금은 낯선, 현실을 벗어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어느 시골 마을로 진정한 쉼을 찾아 헤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여행은 또 시작된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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