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아침을 열며]가자 전쟁 1년, 바이든의 실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이후 대통령 직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가 50여년 정치인생을 영예롭게 마무리하는 데 가장 필요한 성과 중 하나는 중동 정세의 안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 평화에 진전을 이룬 인물로 기록되긴 난망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7일 발발한 가자지구 전쟁은 2년째에 접어들고,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이란과 직접 충돌하면서 역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적어도 바이든 대통령 임기 내에 미국이 가자지구 휴전 협상 타결을 이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그간 백악관에서 나온 메시지는 흔들리는 갈대 같았다. 이스라엘을 벌주는 듯하다가도 이내 감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라파에서 지상전을 시작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500파운드, 2000파운드 폭탄의 대이스라엘 인도를 중단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지원한 폭탄이 민간인 인명피해를 초래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를 묵살하고 라파 지상전을 개시했지만 되레 미국은 지난 7월 500파운드 폭탄 인도를 재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달라져야 하고, 휴전 협상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나 이란과 충돌하자 미국은 재빨리 이스라엘 방위에 대한 “철통같은” 공약을 재확인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암살 작전을 미국에 미리 알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란이 나스랄라 죽음에 대한 복수라며 이스라엘에 미사일 200여기를 쐈을 때 백악관은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불과 2주 만에 1400명 이상을 숨지게 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은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비영리단체 국제위기그룹의 마이클 와히드 한나 국장은 미국이 애당초 이스라엘을 압박해 가자지구 휴전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열의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바이든은 대이스라엘 무기 인도 중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외교 등을 동원해 네타냐후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미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미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마찰을 일으킬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엔 이스라엘의 전쟁을 멈출 능력도 의사도 사실상 없다는 진단이다.

일찌감치 확전을 막지 못한 후과는 민주당에 돌아가고 있다. 미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밀착할수록 아랍계를 포함한 반전 성향 유권자들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비영리기구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지난달 중순 아랍계 미국인 500명에게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42%)이 해리스 부통령(41%)을 앞섰다. AAI가 지난 10여년간 벌인 조사에선 민주당이 공화당 대비 평균 2배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중동 뉴스의 중심이 레바논 전선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가자지구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피란민이 사는 학교, 보육원까지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개전 이래 여성·어린이를 포함해 4만1700명 이상이 눈을 감았다. 사망자 통계를 작성하던 보건부 직원도 숨져 사망자 수가 한동안 업데이트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은 기억 속의 다른 어떤 전쟁보다 더 많은 어린이와 언론인, 구호요원, 의료인을 죽였다”고 비판했다.

공습이 계속되니 재건은 꿈도 못 꾼다. 유엔은 지난 5월 기준 파괴된 주택 7만9000채 재건에 8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레바논 전선의 교전이 치열해져 가자지구가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팔레스타인 피란민은 AP통신에 “우리는 완전히 잊혔다”면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영속화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한때 미국은 세계 유일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동맹 이스라엘에도 말발이 먹히지 않는 지금 미국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만큼 정의롭지도, 강하지도 않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동 평화에 이바지한 게 없는 사람 정도로 기억된다면 그로선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산 무기로 폭격당한 가자지구 주민들에겐 그나 네타냐후 총리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비극이다.

경향신문

최희진 국제부장


최희진 국제부장 daisy@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평균 92분, 14곳 ‘뺑뺑이’… 응급실 대란을 기록하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