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한 상인이 중고 조리 기구를 세척하고 있다. 이곳에선 폐업하는 식당의 식기 등을 사들여 중고로 판매한다. 오삼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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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는 200m 길이의 언덕길 양쪽으로 주방용품 가게들이 길게 줄지어 있다. 이들 가게는 식당 창업을 위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파는 곳이자 폐업 후 손 때 묻은 중고설비가 모여드는 종착지다.
지난 4일 찾은 주방거리는 한산했다. 가게 앞 진열된 물건을 보러 온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40년째 주방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태균 씨는 “10년 전만 해도 가게를 새로 열겠다며 찾아오는 손님이 하루에 2~3명은 됐는데, 지금은 한 달에 1명도 올까 말까”라며 “500개 넘던 주방용품 가게들이 절반 넘게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중고 스테인리스 선반을 세척하고 있던 상인 이모씨는 “쓰던 물건을 팔겠다는 문의는 많은데 사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2015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요즘만큼 구입 문의가 없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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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쌓인 중고품, 일손 바쁜 폐업업체
자영업자 폐업이 늘자 황학동 주방거리 등 이른바 ‘땡처리 시장’에도 불황이 닥쳤다. 땡처리 시장은 폐업한 자영업자로부터 가구·집기 등을 저렴하게 사들여 새로 문 여는 자영업자에게 판매하는 곳이다. 폐업이 늘고 창업이 줄어들자 재고가 쌓인 중고 물품 재고의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문 닫는 업체가 늘며 폐업전문업체는 호황을 맞았다. 철거부터 집기 처리, 폐업 지원금 신청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곳으로 부동산 계약 상황에 따라 당초 모습으로 원상복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정부 폐업 지원금은 최대 250만원으로 지원금 한도에 맞춰 철거하는 것이 이들 업체의 노하우다.
이 와중에 폐업하고 싶어도 대출 잔액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고 ‘유령 영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을 중단하고도 통신판매업으로 업종을 전환해 사업자 번호를 유지하며 버티는 것이다.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가 폐업하면 추가 대출이나 만기 연장이 불가능해 매장이 필요 없는 업종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대전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가게 문을 닫은 박모씨는 “식당 운영은 접었지만 사업자 대출 3000만원이 남아 있어 폐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어쩔 수 없이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고 집 주소로 사업 소재지를 등록해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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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자영업자 지원책 필요
4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가게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자영업 불황이 이어지자 주방 용품 판매점이 문을 닫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오삼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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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업체를 접은 자영업자 수는 98만6487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추이로는 올해 폐업 자영업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불황 속 폐업이 불가피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옥우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만기 연장이나 저리 대출을 넘어 적극적인 채무 조정 지원을, 장기적으로는 지역 산업 발전 관점에서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요국들은 자영업자 대책을 수립할 때 지역 산업 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한국은 단순한 지원 정책을 펼치는데 그친다는 설명이다. 옥 교수는 “지자체, 지역 상인회 등을 중심으로 우리 지역과 상권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설정하고 그 연장선에서 관련 정책을 논의해야 자영업자가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접은 자영업자가 취업 전선에 나설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폐업 자영업자 가운데 급여를 받는 임금 근로자 전환을 원하는 수요가 상당하다”며 “오랫동안 논의가 이뤄졌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시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있다”며 “자영업자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부가 충분한 재정을 투입한다면 자영업자의 임금 근로자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경미·오삼권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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