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윤성원의 주얼리 인사이트] 황금시대의 역설 금값 폭등이 바꾸는 주얼리 산업의 지형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0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2024년 9월 중순, 국제 금값은 온스당 2600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적 고점에 도달했다. 그램당 약 11만 2000원이니 1돈(3.75g)짜리 금반지 하나가 40만원을 훌쩍 넘는다. 중소형 가전제품 한 대 값이랄까. 더 큰 단위로 보면 그 규모가 실감난다. 1㎏짜리 골드바가 1억 2000만원을 넘어섰고, 400트로이 온스(약 12.4㎏) 골드바 하나가 약 13억 5000만원이다. 일부 지역 소형 아파트값과 맞먹는 수준이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런 금값 급등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과 주얼리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금 ETF 순자산 가치는 고공행진 중이다. 이는 금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국가에선 금의 통화 대체 기능까지 논의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세계금협회는 이런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객관적인 분석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금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전 세계적 재평가가 한창인 셈이다. 주얼리 시장은 거세지는 파고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특히 고가의 금 주얼리 판매가 타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업계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이다. 가벼운 디자인, 대체 소재 활용, 투자 가치를 강조한 마케팅 등 다양한 전략으로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금값 급등이 몰고 온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얼리 시장의 변화와 적응이 주목된다.

금 가격 고공행진의 5대 요인
이런 고공행진의 배경에는 크게 다섯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갈등, 미·중 신경전 등 ‘지정학적 불안’이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전자산인 금의 매력도 커진다. 둘째, ‘인플레이션 우려’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고물가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물가 상승세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목표치를 웃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 시기마다 금값은 올랐고, 지금도 많은 투자자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금을 찾고 있다. 셋째, ‘중앙은행들의 금매입’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중국, 러시아, 인도 같은 신흥국들이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 통화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며 금 보유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넷째, ‘미국 달러화 약세’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금의 상대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다른 통화 보유자들의 금 구매력이 증가하고,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금을 찾으면서 수요가 더욱 늘고 있다. 다섯째, ‘미국의 금리 정책’이 금 가격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가 4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하는 공격적 정책을 단행하고 팬데믹 이후 고수해 온 고금리 기조의 방향을 틀었다. 자연스레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값 급등이 몰고 온 소용돌이 속에서 주얼리 산업은 대응 전략을 모색하며 변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주얼리 업계의 양극화된 대응 전략
매일경제

Tana Chun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얼리 업계의 대응 전략은 양극화됐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차별화 전략을 강조하며 고급화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금값 상승을 브랜드 가치 제고의 기회로 삼아 장인 정신을 강조하고, 한정판 제품이나 희소성 있는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이들은 금 모델의 가격을 과감히 인상하면서도 18K 금 사용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 고급 금 주얼리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반영한 전략이다.

반면 중저가 브랜드들은 비용 절감에 나섰다. 14K 골드로 무게를 줄이고 온라인에서는 10K 주얼리 생산도 늘리고 있다. 내부가 비어 있는 할로우 주얼리, 실버 주얼리, 금과 다른 소재를 믹스한 제품, 금 도금 등으로 가격 부담을 낮추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브랜드들은 플래티넘이나 티타늄 같은 대체 금속 사용을 늘리는 한편, 3D 프린팅이나 CAD 등을 통해 금 사용을 최적화한 디자인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한편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값 상승이 다이아몬드 주얼리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 제한적이다. 금의원가 비중이 일반적인 인식보다 낮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고가의 다이아몬드 주얼리에서는 금이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고급 다이아몬드 주얼리에서는 디자인, 브랜드 가치, 장인 정신 등 무형의 요소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비자들도 주얼리 구매 시 단순한 원자재 가치를 넘어 예술적, 감정적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새로운 주얼리 트렌드와 소비자 인식 변화
미니멀리즘이 최근 주얼리 시장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작고 섬세한 디자인의 주얼리가 각광받고 있는데,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레이어드 스타일’ 역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가는 체인을 여러 겹 두르는 이 스타일은 개성 있는 연출이 가능해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두 스타일 모두 적은 양의 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재활용 금을 사용한 주얼리나 환경친화적인 생산 방식을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늘고 있는데,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주얼리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금 주얼리를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투자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마케팅하는 전략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금 투자 트렌드의 변화와 전망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금값 급등은 투자 패턴과 소비자 행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얼리가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중고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금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소액 투자 가능성이 확대되면서 금 투자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ETF, 선물, 금 기반 스테이블코인 등 투자 방식도 다양해졌다. 핀테크의 발전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금 투자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수단들은 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지만 각기 다른 위험과 규제 환경을 가지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한편 금값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지정학적 불안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과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정책으로 조정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처럼 금 시장은 새로운 투자 방식의 등장과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복잡한 환경을 면밀히 파악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주얼리 시장의 새로운 지평
불확실성이 큰 시기, 금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주얼리 선택은 이제 디자인과 원료의 출처, 제조 과정의 윤리성, 심지어 투자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주얼리 시장의 지형도는 빠르게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황금의 시대에 주얼리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문화와 예술, 투자의 영역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금값 폭등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니즈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있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지금, 주얼리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국면을 맞이했다. 금값 급등이 몰고 온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얼리 시장이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그 미래가 주목된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