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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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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행 파견법은 수위·경비원의 업무를 포함해 32개 업종의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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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길(가명) | 아파트 경비노동자





내가 경비 일을 기쁘고 즐겁게 하려면 어찌 됐든 민원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누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물이 있다며 빨리 치우라고 성화를 낸다고 쳐요. 그러면, 사과부터 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빨리 대처를 못 해 죄송합니다.” 내가 24시간 1분1초 간격으로 엘리베이터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지만, 입주민의 다그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따지게 되면 잡음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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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아무리 ‘평화롭게(?)’ 넘기려 해도 도가 지나친 ‘갑질’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0.01%도 안 됩니다. 0.01%. 이런 사람들을 나는 속으로 ‘또라이’라고 여기는데, 내가 무슨 생활지도 교사도 아닌 터에 이런 경우는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경비 일을 14년째 하는 내 노하우입니다.



경비 나오는 사람들이 나처럼 뭔가를 실패한 경우가 많아요. 젊어서는 큰 기업에서 중장비 정비를 하면서 외국 가서 일하고 그랬습니다. 그때 번 돈으로 아파트도 샀어요. 보험 영업도 좀 했고요. 그러다 부동산중개업 한다고 아파트 팔고 사무실 열어 촐싹대다 망했어요. 지금은 그 아파트 값 엄청나게 올랐대요. 딸 결혼하는 데 좀 보태주고 남은 게 뭐 있나요. 벌어야 사는 나 같은 생계형이 경비의 80%고, 나머지는 연금이 나와도 직업을 가져야 몸이 풀린다는 사람들입니다. 다들 한 자락씩 한 사람들이고, 똑똑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게 말단으로, 밑으로 갈수록 힘이 없는 처지가 되잖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이 곧 잘리게 됐습니다. 3개월짜리 단기 계약이니까 “1주일 뒤에 계약이 끝납니다” 이러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래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게 되는 상황도 일어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동료를 갈구기도 합니다.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관리소장에게 ‘갈굼을 당하면서도 나는 열심히 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라도 성심껏 하겠다’는 처절한 편지도 쓰고 그런다니까요. 이런 비슷한 상황은 나도 한두번 당한 적이 있어요.



한 10년 전에 민주노총에 있었다는 분이 전단지를 들고 내가 일하는 아파트로 찾아왔거든요. 경비들 권리를 찾자는 이야기에 동조해 나섰어요. 실태조사를 한다고 해서 경비들 설득하고, 모임 한다고 하면 전화 돌려서 오라고 하고 그랬어요. 젊어서부터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좀 있긴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다 보니 나도 피해를 조금 봤어요. 그때 내가 들어가려던 아파트에서 노동조합 한다고 겁을 먹고 나를 안 받았어요.



사실 그런 모임을 해도 나한테 경제적으로는 도움 되는 건 없잖아요. 하다못해 전화비도 들고. 그래도 한때는 한 30명까지 모였습니다. 노동자센터에서 밥도 사고 지원을 좀 했어요. 요새는 지원을 안 하니까 10명도 모이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공제를 좀 하자고 제안했어요. 한달에 1만원씩 내면 추석 때 선물도 나오고 급하면 소액 대출도 되고. 자기가 다 찾아가는 것인데도 안 하려고 해요. 내일모레면 경비 그만둘 수 있다고 안 한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서로 도움이 됐으면 하는 차원에서 조직하자는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도움이라는 게 딴거 아닙니다. 우리 경비들이 초단기 계약이라 이직이 많은 직종이거든요. 직장 구할 때 소개해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나는 20명 정도 알선했어요. 그런데 뒷맛이 좋지 않을 때도 있어요. 모임에 나오라고 전화하면 잘 안 받고 협조를 좀 해주면 좋은데 인간관계가 참 그렇더라고요.



이전에 파견법이 없을 때는 한 아파트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3개월짜리 계약서는 없었습니다. 이거 때문에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자르고 동료들 간에 갈수록 안 좋아집니다. 모임에 함께 힘을 모아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잘 안되고 그래요.



그래도 아침에 눈뜨면 좋습니다. 잠자고 일어나는 게 기적이잖아요. 아침 6시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6시 퇴근하는 24시간 맞교대로 250만원을 손에 쥐지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지 일해서 돈 버는 세상은 아닙니다. 건강해서 일하니까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잖아요. 입주민도 동료도 이렇게 만나는 것 자체가 즐겁고 기쁩니다. 잘 지내십시오.





구술 채록 박미경 전태일재단 기획실장





※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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