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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만물상] 유치원이 노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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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문득 아이가 어릴 적 자주 다닌 키즈 카페가 생각나서 찾아보니 ‘노치원’으로 바뀌어 있어서 씁쓸했다는 글을 보았다. ‘노치원’은 ‘노인 유치원’을 줄인 말이다. 어르신들이 낮 동안 머물며 돌봄을 받는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다. 경로당엔 가서 할 일이 마땅치 않고 요양원은 집을 떠나야 하는데, 노치원은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집에서 통원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장기 요양 인정 등급을 받고 이용할 수 있다.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유치원 등 육아 시설은 크게 줄고 노치원 등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교육·보육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3만7000여 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5만2000여 곳)보다 28%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노치원 등 노인 시설은 7만2000여 곳에서 9만3000여 곳으로 27% 늘어났다. 8일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간 어린이집·유치원이 곧바로 노치원 등 어르신 시설로 바뀐 사례가 283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폐교를 실버타운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해 서울에서도 학교가 실버타운으로 변신하는 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치원과 노치원은 대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낮 동안 돌봐주는 것이 같고 정부 지원을 받아 이용하는 것도 같다. 노치원도 유치원처럼 셔틀버스로 데려오고 데려다준다.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색칠 놀이와 노래·율동 등으로 비슷하다. 심지어 유치원장은 노치원 설립 자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유치원에서 노치원으로 전환이 수월한 편이라고 한다.

▶인구 감소 여파에 교육 업체들도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 학습지 ‘눈높이’로 유명한 대교는 사업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자 노치원 등 시니어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를 설립해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역시 학습지로 알려진 구몬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학습지를 배달하고 주 1회 교사가 방문해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시니어 분야를 키우고 있다.

▶노치원 설립이 순항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여의도 등 일부 아파트 재건축 단지에서 서울시가 기부 채납 시설로 노치원을 제시하자 아파트 소유주들이 반대해 진통을 겪고 있다. 65세 이상 1000만 시대에 접어들어 노치원 수요는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노치원이 보호자 부담을 덜고 어르신 삶의 질을 높이는 순기능을 하는 것도 분명하다. 일본과 독일 등 선진국에선 보편적 복지 시설이기도 하다. 서울시 등이 행정 역량을 잘 발휘해 도심에도 공급을 늘려가야 한다.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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