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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물길 트니 살아난 시화호…“자연에 주도권을 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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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8일 ‘리와일딩 아시아 포럼’에 참석했던 일본·싱가포르·몽골·인도네시아 전문가와 생명다양성재단 회원들이 경기도 안산 시화호 방조제 인근 대송습지를 찾아 ‘시화호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최종인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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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호에 해수가 들어온 지 23년쯤 됐습니다. 이제 겨울철새 25만 마리가 제일 먼저 찾는 중간 기착지가 됐고, 삵·고라니·수달의 삶터가 됐어요.”



지난달 28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대송습지에서 시화호 30년 역사를 설명하던 최종인(70)씨가 시화호 하류에 도착한 겨울철새 큰기러기 무리를 가리켰다. 농업·공업용수 이용과 간척을 위해 만들어진 시화호는 1990년대 중후반 ‘죽음의 호수’로 불렸다. 정부와 수자원공사가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를 이어 총 12.7㎞의 거대한 둑(방조제)을 쌓아 인공호수를 만들었지만, 각종 생활하수·폐수가 유입되고 물길이 막히자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농작물들이 바람에 날려온 염분으로 피해를 보았다. 당국은 결국 2000년 12월 담수화를 포기하고 방조제의 문을 열었다.



그렇게 물길이 다시 통한 지 3년 정도가 지나자 시화호 수질이 나아지고, 인근 갯벌에도 생명이 되살아났다. 2011년 조력발전소가 가동되며 방조제 안팎을 오가는 바닷물의 양이 늘어나며 ‘야생의 복귀’는 더 빨라졌다는 것이 최씨 설명이었다. 과거 갯벌이었던 지역은 육지화되며 염생식물을 밀어내고 산조풀·띠풀·억새 등 다양한 육지식물이 자리 잡았다. “이렇게 식생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이) 더 간섭만 안 하면 돼요. 그럼 자연은 그 자리를 지키고 계속 생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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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시화호방조제 인근 과거 갯벌이었다가 육지화된 초원지대에서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가 조개껍데기가 남아있는 땅에 남은 고라니 발자국을 가리키고 있다.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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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가 1998년부터 지난 26년간 목격한 ‘시화호 생태계 부활’은 이날 현장 답사에 참여한 해외 여러 나라 생태학자·환경활동가의 활동과 맞닿아있다. 이날 현장에 앞서 26일 서울 이화여대에서는 아시아 첫 ‘리와일딩 포럼’이 개최됐다. 그동안 생명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려온 생태·환경연구단체 ‘생명다양성재단’과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 등은 9월20~28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리와일딩을 주제로 한 전시, 포럼, 다큐 상영,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로 ‘리와일딩 주간’을 진행했다. 포럼과 행사에 참여했던 일본·싱가포르·몽골·인도네시아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리와일딩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이날 시화호를 찾은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인 리와일딩(Rewilding)은 최근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새로운 자연 보전 접근법으로 1990년대 초 미국 환경운동가 데이브 포먼과 복원생태학자 마이클 술레 등이 처음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됐고,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2016년 저서 ‘지구의 절반’에서 지구의 절반을 인간의 활동이 미치지 않는 보호구역으로 정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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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연구단체 ‘생명다양성재단’과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 등은 9월20~28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리와일딩을 주제로 한 전시, 포럼, 다큐 상영, 토크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로 ‘리와일딩 주간’을 진행했다. 생명당양성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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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일딩을 직역하면 ‘재야생화’라는 뜻이 되겠지만, 단순히 자연 서식지에서 사라진 생물 종이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것이 주최 쪽의 설명이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는 “어떤 멸종위기종 한 종의 복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야생에 돌아오면 생태계가 알아서 굴러가도록 인간은 점점 개입을 줄여 자연이 알아서 돌아가게끔 하는 접근법”이라고 ‘참을 수 있는(없는) 존재의 야생성’ 전시 오프닝에서 말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번역한 미국 환경운동가 조지 몽비오의 책 ‘활생’(2020년)의 용어 설명에서도 어떤 특정한 상태·시점으로 복귀한다는 뜻이 강한 ‘재야생화’와 리와일딩을 구분해 “생명체들이 추동하는 새로운 야생 상태”인 리와일딩을 우리 말 ‘활생’(活生)으로 쓰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다만 이미 인류가 훼손한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되기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연에 힘을 싣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영양 단계 리와일딩’(Trophic Rewilding)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화호 방조제 개방’이나 강변 주변 콘크리트를 걷어낸 뒤 식생이 살아난 강서습지 등이 그러한 사례라는 것이다. 인간의 개입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멸종위기종 재도입이나 조림사업과 비슷하지만 이후 “자연에 제 갈 길을 온전히 맡긴다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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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비영리단체 ‘네이처 소사이어티 싱가포르’는 과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오가던 기찻길이 폐쇄되자 시민들이 녹지화를 제안한 ‘레일 코리도’ 사업을 진행 중이다. 리와일딩 아시아 다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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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리와일딩 사례를 담은 다큐 ‘리와일딩 아시아’의 한 장면. 싱가포르 식물원 환경이 개선되자 수달이 돌아와 사람과 공존하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리와일딩 아시아 다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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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일딩 아시아 다큐와 포럼에 참석한 아시아 각 나라 전문가들이 공유한 사례도 이와 비슷했다. 싱가포르 비영리단체 ‘네이처 소사이어티 싱가포르’는 과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오가던 기찻길이 폐쇄되자 시민들이 녹지화를 제안한 ‘레일 코리도’ 사업을 공유했다.



강민응오 네이처 소사이어티 싱가포르 부회장은 “레일 코리도에서는 식생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빨리 자라나는 풀을 제거했다”면서 “그런 뒤 다른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개척자 수종’을 심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조건 뭔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읽어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도네시아는 불법 팜유 농장에 개척자 수종을 도입한 뒤 15년 만에 오랑우탄이 살 수 있는 숲이 되살아났고, 몽골에서는 1969년 절멸한 야생말 ‘프르제발스키’를 도입한 뒤 말의 사체를 먹이로 하는 독수리와 여우, 각종 곤충이 균형 있는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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