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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죽은 아들 냉동정자로 핏줄 잇겠다”는 부모…인도 법원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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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도 사람들이 8일(현지시각) 우타르프라데시 주 알라하바드에서 힌두 축제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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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법원이 4년의 법정 다툼 끝에 60대 부부가 죽은 아들의 정자로 손자를 보려는 소망에 푸른 신호등을 밝혔다.



인도 델리의 고등법원은 최근 하르비르 카우르와 구르빈데르 싱 부부가 숨진 아들의 정자를 냉동 보관하고 있는 강가람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자 샘플을 이들 부부에게 넘겨주라”고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고 영국의 비비시(BBC)가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 부부는 “이제라도 우리 아들의 핏줄을 되살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의 아들 프리트 인데르 싱은 2020년 6월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병원은 “화학요법 치료를 받으면 부작용으로 정자의 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미리 정자를 추출해 냉동보관해 놓자고 권유했다. 미혼이던 프리트 인데르는 동의했고 그의 정자 샘플은 같은 해 6월 27일 냉동 보관됐다. 그는 그해 9월 숨졌다.



몇 달 뒤 부모는 병원에 아들 정자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은 “법적으로 정자는 배우자에게만 돌려줄 수 있다”며 거절했다. 부부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에 승소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정자로 대리모를 통해 손자를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두 숨진 뒤에는 자신들의 두 딸이 태어날 조카의 양육을 책임지겠다는 동의서도 법정에 제출했다.



이번 판결을 내린 프라티바 싱 판사는 “생전 정자로 사후에 아기를 만드는 걸 금하는 법이 인도에는 없다”며 “부모라면 배우자와 자식들이 없는 한 상속법에 따라 정자 샘플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법률 전문가들은 매우 드문 사건이라면서도 전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2018년 인도 서부 도시 푸네에서는 48살 여성이 27살에 뇌종양으로 숨진 아들의 정자로 대리모를 통해 손자를 본 전례가 있다. 2019년엔 미국 뉴욕주에서 법원이 21살 미군 장병이 스키 사고로 숨지자 부모의 요청에 따라 미리 냉동 보관되어 있던 정자로 손자를 볼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렇지만 국제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합의 형성돼 있는 건 아니다. 미국와 영국, 일본, 체코 등은 정자의 사후 이용을 허용한다. 호주에서는 사후 1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허용한다. 반면 이탈리아와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헝가리, 슬로베니아 등은 허용하지 않는다. 규정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다.



인도 정부는 죽은 아들의 정자로 손자를 보려는 시도에 부정적이다. 인도 당국자는 “법률상 불임 부부나 여성에게만 대리모가 허용된다”며 “미혼 남성이 대리모로 아이를 낳는 건 불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아들은 정자 사용에 대한 어떤 동의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자동으로 정자의 이용권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들 부부의 법률 대리인은 “인도의 대리모 관련 법은 대리모의 상업적 이용을 막기 위한 것이지, 슬픔에 잠긴 부모의 개인적 자유를 막기 위한 법이 아니다”며 “아들 프리트 인데르는 당시 미혼이었지만, 애초 정자 추출 보관 목적이 자식을 낳기 위한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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