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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시론] 강남 학생 서울대 진학 제한하면 집값 잡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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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좌승희 한국제도경제학회 이사장·전 경기연구원장


이창용(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며 아주 튀는 제안으로 눈길을 끌었다. 지역균형 대입 선발을 확대해 부동산 가격 상승의 발원지인 서울 강남 고교 졸업생들의 서울대 입학을 제한하자는 취지였다. 경제학자 출신인 이 총재가 설마 그런 발언을 했을까 의구심이 들어 한국은행의 관련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총재와 한은의 주장은 한국의 해묵은 정책 실패 사례들을 되새겨볼 기회를 제공했다. 지역균형 대입선발 문제부터 보자. 고교 입시 과열을 막는다고 1974년부터 시작된 고교 평준화와 전교조 교육이 보편화하기 이전에는 지방 명문고 출신 인재들이 넘쳐났고, 서울대 입시에서도 전혀 서울의 명문고들에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수월성 교육보다 민주적·전인적 보편 교육을 내세운 전교조 교육이 보편화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이색적 제안

규제 회피 제2, 제3 강남 부작용

수월성 교육 자유롭게 받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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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지방 명문고들이 탄탄하게 자리 잡았던 배경에는 지금처럼 정부의 요란한 무슨 지역균형 발전 대책이니 지역균형 대입 선발 정책이니 하는 시혜성 정책 덕분이 아니었다. 너도나도 일류 명문고가 되려는 지방고교와 학생·학부모의 열망과 경쟁 노력이 만든 성과였다.

그러나 입시 과열을 막겠다는 편향된 정책이 지방의 자생적 열망을 꺾어버렸다. 인제 와서 지방을 도와준다고 지역균형 선발이라는 편법을 동원하지만,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하다. 포퓰리즘이 또 다른 땜질식 포퓰리즘을 양산하는 격이다.

그런데 더 역설적인 것은 그동안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한다고 온갖 지방 지원 정책을 추진해왔는데 정작 지방 명문고는 이미 대부분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방대학들마저 하향 평준화되고 학생들은 서울 소재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역 균형발전을 한다고 1980년대부터 강력한 수도권 규제를 도입했지만, 수도권 인구가 이미 전국의 절반을 넘었고 지방은 더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일부의 주장처럼 잘하든 못하든 학교와 지방에 국가의 자원을 평등하게 나눠주고 기회도 똑같이 보장하면 지방이 균형되게 발전한다면 한국은 물론이고 지구촌에 지역 불균형 문제는 일찍이 사라졌어야 옳다. 하지만 균형발전 정책이 제대로 성공한 국가를 찾기 어렵다.

지역 균형발전의 해답은 유한한 자원을 N분의 1로 분산하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들의 성과 경쟁을 통해 성장의 거점이 되는 도시·대학·고교를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평등을 탐닉하는 한국의 ‘이념 정치’가 이를 거부하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오늘날 사교육 과열 현상은 공교육 부실화가 원인이다. 평준화 교육제도로 명문고는 거의 사라지고 수월성 교육을 경시하는 바람에 중등교육이 부실해진 지 오래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오히려 소득 수준 향상과 자녀 수 감소에 따라 소수 자녀의 수월성 교육을 선호하면서 사교육 수요가 더 넘쳐난다.

명문 고교들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거의 무료로 교육받던 고급 공교육을 이젠 사교육 시장에서 비싼 돈을 들여 더 치열한 경쟁으로 구매해야 하니 학부모의 등골이 휠 수밖에 없다. 평준화된 보편 교육을 도입하면 경쟁 안 해도 된다고 해서 진짜 그런 줄 알았는데, 실상은 더 무서운 사교육 시장 경쟁을 만났다. 이는 국가가 대국민 사기극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공교육이 무너지니 이제는 비싼 학원을 골라 보낼 수 있는 부모의 재력이 대학 입시를 결정하는 판이다. 이런 잘못된 교육정책의 인센티브 구조 왜곡에는 눈 감고 강남 거주 학생의 입시 차별, 지방 학생 우대 등 지역균형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사회주의 평등 이념 추종과 무엇이 다른가.

다양성 있는 수월성 교육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규제를 회피하려는 학부모를 더 부추겨 제2, 제3의 강남을 조장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다.

게다가 강남 거주 학생의 입시 차별 정책이 과연 한은이 원하는 소기의 인플레 안정 효과를 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과열이 문제라면 이는 상대가격 왜곡의 문제이지 절대가격인 물가의 인플레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거시경제학의 상식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좌승희 한국제도경제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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