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연설을 갖고 있다. /AFPBBNews=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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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아랍 국가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최근 며칠 동안 카타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레바논의 새 대통령 선출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특사인 아모스 호치스타인 백악관 선임고문도 아랍 국가 관리들에게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헤즈볼라가 약화되는 것을 레바논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할 기회로 봐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레바논의 대통령 자리는 공석이다. 2022년 10월 미셸 아운 전 레바논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 약 2년째 새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레바논 대통령 선출 계획은 레바논 정치 시스템에서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크게 줄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매튜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주 기자들에게 "우리가 이 상황에서 바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헤즈볼라가 레바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지배력과 통제력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레바논 사회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점령 기간 고착화된 종파적, 정치적 분열이 이어지고 있으며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기독교인, 드루즈족 등 주요 세력들의 엘리트들이 정부 구성원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정부 기관은 수년간의 부패와 정치적 교착 상태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는 지난 5월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간 레바논 경제도 무너졌다. 2019년 이후 레바논 화폐의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97% 하락했고, 레바논 주민들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전기가 없어 민간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일부 원조를 받고 있는 레바논 군대는 헤즈볼라보다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수년간 레바논 정부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해왔으나 레바논의 시스템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지난 9월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외곽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상황을 살피고 있다. /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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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대통령은 128명으로 구성된 의회에서 3분의 2 지지로 선출된다. 어느 한 정파도 독자적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의석을 갖고 있지 않아 반드시 합의가 필요하다. 15석을 가진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들의 지지 없이는 정치적 합의가 이뤄질 수 없다.
이에 익명의 관계자들은 미국이 구상 중인 계획의 성공은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와 나비 베리 레바논 국회의장에 달려있다고 설명한다. 베리 국회의장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을 요구하고 있는 레바논 정치권의 핵심 인물로, 헤즈볼라와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베리 국회의장이 레바논의 핵심 정파들을 통합해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필요한 목소리를 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주변국 반응은 엇갈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구상을 지지하는 반면 가자지구 휴전 중재를 맡고 있는 이집트 및 카타르 인사들은 "미국의 계획이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며 우려했다. 이들은 미국 관리들과의 회담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파괴하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헤즈볼라는 분쟁에 대한 정치적 해결의 일부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집트는 1990년 끝난 내전으로 쇠약해진 레바논 정치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또다시 내전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까지도 레바논의 많은 정치 세력은 내전 당시 군벌 출신이 이끌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이스라엘과의 전쟁 상황에서 레바논의 권력을 쥘 것으로 보이는 인물은 국민은 물론, 라이벌 정치 세력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던 이스라엘은 극우 세력인 레바논 군의 마론파 기독교 지도자 바치르 게마옐이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을 지원했는데 게마옐은 취임 후 몇주 뒤 암살당했다.
시리아와 알제리에 주재했던 로버트 포드 전 미국 대사는 "레바논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뒤처져 있는 상황에, 새 레바논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취임한 것으로 보이게 되면 그는 레바논인들 사이에서 더 큰 불신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주 동안 레바논은 이스라엘로부터 3000회 이상의 공습을 받았으며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지난해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 발발과 동시에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 충돌이 시작된 이후 발생한 사망자는 2000명 이상이다.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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