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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8개월만 한 테이블 앉았지만 의견차 확인…의정갈등 해소 '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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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0일 서울대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열린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보건복지부 주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서 의료진이 패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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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행동을 멈추고 의료현장 혁신을 위한 지혜를 나눠주길 바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일단 (의대 증원 등을) 멈추고 (사회 각계)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본다."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의료개혁'의 필요성엔 공감했지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입장차는 좁히지 못했다. 어렵게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의정갈등 해소를 위해선 여전히 먼 길이 남았다. 8개월째에 접어든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 속에 의·정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머리를 맞댄 결과다.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이하 비대위)는 10일 서울대 의대에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 측에선 장상윤 수석과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 비대위 측에선 강희경 비대위원장과 하은진 비대위원이 참석했다.

이처럼 정부 주요 인사와 의료계가 함께 나선 공개 토론은 사실상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 2월 박민수 복지부 2차관과 김택우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원장의 TV 토론회 이후 이렇다 할 공식적인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엔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 구축 ▶환자 중심 의료체계 구축 ▶의대 증원 필요성 등이 논의 대상으로 올랐다. 비대위는 행사 전 누가 옳은지 따지는 토론보다 한국 의료 위기 극복을 위한 '숙론'의 장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의·정 양측은 뒤늦게나마 이런 자리가 마련된 데 의미를 부여했다. 정경실 단장은 "우리 의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머리 맞대고 논의하는 숙론의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장기적 안목으로 다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다 올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면서 "앞으로 이런 자리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를 비롯해 '한국 의료가 바뀌어야 한다'는 전제엔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장상윤 수석은 "우리 의료의 고착화된 문제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격차와 쏠림"이라면서 "지역으로 가면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를 체감할 수 있다. 의료 분야에선 필수가 아닌 비필수 의료로 쏠림이 고착화됐다"고 말했다.

하은진 비대위원도 "(의료체계에)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데엔 동의한다. 지표상으로는 훌륭한 K-의료가 맞지만, (의사를) 계속 갈아 넣을 수도 없고 (환자가) 계속 많이 이용할 수도 없는 만큼 지속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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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융합관에서 열린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보건복지부 주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에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 장상윤 수석, 유미화 녹색소비자연대 대표(진행), 강희경 비대위원장, 하은진 비대위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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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정 갈등의 근본 원인인 의대 증원으로 들어가자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장 수석은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앞으로 만성질환 2개 이상 가진 65세 이상 인구가 매년 50만명 이상 늘어나 의사 손길이 더 필요해진다"면서 "증원이 이뤄져도 의사의 사회·경제적 처우는 오히려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강 비대위원장은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 게 첫 번째 대책이 돼야 한다"면서 "의사 수가 많으면 의료비 지출도 많아진다. (증원보다는) 필요한 곳에 의사가 갈 수 있도록 해주자"고 제안했다.

지난주 교육부의 의대생 '조건부 휴학 승인' 발표와 의대 교육과정 단축 검토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장 수석은 "의대 교육을 5년으로 단축하겠다는 말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발표 취지는 "의대생들이 나중에 복귀한 후에 잃어버린 시간만큼 프로그램을 단축하거나 방학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자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휴학 처리에 대해서도 "일부 학생들이 휴학은 권리라고 이야기하지만, 휴학은 권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반면 강 비대위원장은 "(고등학교로 치면) 봄, 여름에 못 다녔는데 10∼11월부터 시작해서 그 학년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며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양측 견해차에도 토론회가 어렵게 열렸지만, 본격적인 의정 대화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비대위가 전체 의료계를 대표하지 않는 데다, 의협 등 의사단체 대부분은 꿈쩍하지 않아서다. 이들 단체는 내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등이 없다면 여야의정 협의체나 정부의 의료인력 수급 추계 기구 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문제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다시 확인할 수 있는 토론회였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경기도의사회는 "토론회는 (정부에) 의료계 의견을 들었다는 명분만 줄 뿐"이라면서 "전공의 한 명이라도 건드리면 강력히 투쟁하겠다던 약속을 지켜 최후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 사태 해결의 키를 쥔 전공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2025년도 의대 정원에 대한 입장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환자단체들은 의정 양측이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조금씩 양보해 대화의 장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더는 갈등만 지속하면 연내 사태 해결은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대 교육과정 논란 등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풀리기보단 점점 더 꼬이고 있는데, 의정 양측이 고통받는 환자와 국민을 생각해 현실적으로 풀 수 있는 의제부터 꺼내놓고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면서 "올해를 넘기지 않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전공의들도 환자 곁으로 돌아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설득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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