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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단독]“아픔과 회복 주제로 하는 한강 작품엔 신비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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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 문학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씨 인터뷰

동아일보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을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의 한국 문학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씨. 본인 제공. 마스나카 아야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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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아픔과 회복을 주제로 하는 한강의 작품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요.”

일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등 한강 작품 5편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 씨(齋藤眞理子·64)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한강 작품을 읽으면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인정할 수 있죠. 한강의 작품에는 마음 깊은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사이토 씨는 일본 문학계에서 한국어 번역 1인자로 손꼽힌다. 1980년 메이지대 재학 중 동아리에서 처음 한국어를 접한 뒤 1991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2014년 박민규의 ‘카스테라’로 본격적인 한국 문학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8년 번역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 30만 부 가량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등극, 한국 문학 붐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 문학 팬들은 훨씬 한국 작품을 많이 읽고 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사이토 씨는 “언젠가 수상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아직 젊어서 올해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죽은 다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세계가 한강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젊어서 수상하지 못할 것같다고 예상한 내가 늙은 것 같다. 확실히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번역한 한강 작품은 ‘희랍어 시간’. 2017년 출판사 쇼분사(晶文社)가 한국 문학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그에게 번역을 맡긴 계기가 됐다. ‘희랍어 시간’ 번역 후 한강 작품에 빠진 사이토 씨는 ‘흰’ 번역을 직접 출판사에 제안해 출간했고 이후 ‘노랑무늬 영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도 번역했다.

그는 여러 한국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의 아픈 역사에 주목한다. 한강에 대해서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온 뛰어난 작가이지, 결코 고립된 천재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분단과 전쟁, 군사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 등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역사를 살아 왔잖아요. 아픈 역사를 겪은 단단함과 그 위에 펼쳐지는 섬세함이 한국 문학의 매력이죠.”

일본에 다양한 한강 작품을 번역해 소개했지만, 정작 한강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메일, 온라인 회의를 통해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라면서도 “항상 정중하게 친절하게 답장을 보내 주신다. 깊이 있는 인품에 유머도 겸비한 분”이라고 한강을 기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번역하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제주를 찾았을 때 한강이 직접 작품 배경이 된 지역을 알려주기도 했다.

일본의 한국 문학 번역 1인자로 손꼽히는 그는 다양한 한국 작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

“황정은은 지상에 이런 사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작가입니다. 배수아는 놀라운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어디까지 갈지 따라가 보고 싶어요. 박솔뫼는 가장 편하면서도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실험성이 돋보입니다. 정지돈은, 뭐가 뭔지 잘 모르곘지만 어쨌튼 정말 재밌고 끌리는 작가에요.”

일본에서는 요즘 활동하는 젊은 한국 작가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이토 씨가 1960~8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박완서, 이청준, 이호철, 윤흥길, 최인흥 등의 작품을 번역해 보고 싶다. 구체적 계획도 세우고 있다”며 향후 계획에 대해 귀띔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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