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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매경데스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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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형 보험사의 자동차보험은 가격이 4개 존재한다.

대면, 전화영업(TM), 홈페이지 등 온라인(CM, 다이렉트보험), 네이버·카카오 등이 운영하는 가격 비교 플랫폼(PM). 각각 가격이 달라 4요율이라고도 한다. 판매 방식에 따른 사업비 차이를 인정한다는 취지다.

올해 시작된 가격 비교 플랫폼은 보험도 한곳에서 가격을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자며 추진된 혁신금융서비스다. 보험사들과 플랫폼과 당국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새로운 요율을 적용하는 식으로 결론이 내려지면서 4요율 체제가 됐다. 보험사의 선택에 따라 3요율과 4요율 중에서 택할 수 있지만 빅4(삼성·DB·현대·KB)로 불리는 대형사는 4요율제를 택하고 있다.

대형 보험사에서 동일한 조건의 자동차보험을 가입하는 경우 온라인 채널을 통해 가입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한 대형 보험사의 사례다. 온라인 가입 보험료를 100이라고 하면 대면 127, 전화영업 117, 가격비교 플랫폼은 103이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가격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견적을 따져보고 가입은 각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하는 식이다. 9곳의 보험 비교 사이트를 이용한 고객이 81만명에 달하지만 가입까지 한 경우는 9% 수준인 7만3000여 명에 그쳤다. 야심 차게 준비한 서비스 이용이 부진하자 지난달 말 당국에서 절충안을 내놨다.

가격 비교 사이트도 보험사 홈페이지와 가격을 동일하게 하자는 것이다. 현재 가격 비교 사이트는 홈페이지보다 3%가량 비싸다. 플랫폼 수수료다. 이를 1%대로 낮추고 이 비용은 보험사들이 부담하자는 취지로 업계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당국에선 '자동차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2.0' 출시 마감 시한을 연말까지로 제시했다.

보험사도 플랫폼도 마뜩잖은 표정이다. 보험사 입장에선 플랫폼 수수료를 부담하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이는 고객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우려한다. 알짜 수입원이던 갱신 수수료도 사라지고 장기적으론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지고 결국 종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깔려 있다. 플랫폼은 운영 비용을 고려할 때 1%는 너무 낮다고 아우성이다. 이미 보험사가 온라인 영업을 위해 광고비 등을 지출하면서 가격 비교 플랫폼에만 너무 인색하다는 것이다. 양측의 우려가 모두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보험사 입장에선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수수료를 계속 올리는 배달앱의 횡포가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입장에선 보험사들이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꼭 보험사만의 일도 아니다. 디지털의 발전과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에 모든 산업이 각자의 버전으로 고르디우스 매듭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동일 상품에 대해서 3~4개의 가격 차별 대신 상품마다 하나의 가격을 부여하는 1요율제는 어떤가. 요율제 기반의 기존 상식을 뒤집어보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요율을 만들고 적용하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정보 확산이 지금보다 느렸고 전화, 인터넷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5요율, 6요율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요율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더 정보 공유·확산이 빨라질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채널별 가격 차별이 유지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미 플랫폼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더 싼 홈페이지에서 가입하는 똑똑해진 소비자들의 보험 가입 패턴은 이를 입증한다. 기술 발전과 함께 가입 채널을 구분짓기 힘든 상황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보험사, 플랫폼, 금융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볼 때가 됐다.

[정욱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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