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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제왕’의 심기를 먼저 생각하니...금융권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 [기자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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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은 과연 행복할까. 지난 10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장면을 보며 떠오른 질문이다. 이날 그는 그룹 차원에서 전임 회장 친인척에게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내준 경위를 따지는 여야 의원 질타에 사죄했다. 그리고 지주 회장 권한 축소를 재발 대책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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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한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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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자는 ‘제왕적 권한’이라 지적받는 지주 회장의 광범위한 인사권을 대폭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향후 우리금융에서는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한 자회사 임원 인사는 각 자회사가 전담한다. 현재 은행 등 자회사 임원 190여 명을 선임할 때 지주사와 사전에 협의하게 돼 있지만 연말 인사부터는 자회사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사실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이 분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주 회장에게 집중된 권력이 내부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인식에서다. 수년간 이어져온 우리금융의 부당대출만 해도 그렇다. 내부통제가 작동하는 조직이라면 보다 초기 단계에서 제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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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그룹 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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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회사 임원에 대한 인사권까지 지주 회장이 쥐는 체계에선 쓴소리가 어려워진다. 이를 넘어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조직의 이익보다는 회장의 심기를 우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축소하고 은폐해야 할 유인이 생긴다. 회장의 모든 결정은 ‘현명한 판단’으로 칭송받고, 그룹 내부엔 ‘치명적 문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포장된다.

이것은 금융권의 불행이다. 투명한 보고 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은행과 거래해야 하는 금융 소비자의 불행이다. 그러나 그전에 지주 회장 본인의 불행이다. 구성원 모두가 본인에게 박수 치는 조직의 수장이 된다는 건 행복이 아니다. 다들 뻔히 보는 문제를 혼자서만 직시하지 못한다. 결국 재임 기간에 조직의 병폐를 키웠다고 지적받게 된다.

금융의 전문화가 가속화하는 시기이기에 앞으로도 금융지주 회장은 권한의 분산을 더 자주 요구받게 될 것이다. 회장 개인으로 봤을 때도 이것은 오롯이 ‘포기’로만 평가할 일은 아니다. 외려 더 많이,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야를 ‘선택’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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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영 금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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