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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이슈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김광호 전 서울청장 무죄 이유는…일선 경찰에만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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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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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한 혐의를 받는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로써 참사 발생 약 2년 만에 주요 기관장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 기소된 이들 중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일부 실무 책임자들에게만 유죄가 인정됐다.

1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 권성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①사고 이전 ②사고 당일 ③사고 뒤 대응 등 단계별로 김 전 청장이 직접적‧구체적 주의 의무를 위반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수 있는지 따졌다. 과실과 사고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도 주요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우선 “김 전 청장이 안전과 질서 유지 등을 위해 충실한 임무를 직접 수행하거나 관할서를 관리‧감독할 일반적 의무는 있다”고 봤다.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적시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 처벌로 이어질 만큼 구체적·직접적 주의 의무 위반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안전관리가 이뤄질 거란 시민의 구체적인 기대와 신뢰에도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과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난 예방과 관련된 경찰 조직 전반의 적극적이지 못하고 안일한 인식과 문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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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재판 결론은 같았다. 사진은 당시 민관군 합동 수색작업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김광호, 사고 예견성 없다”…세월호와 판박이



재판부는 사고 이전 단계에서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용산서의 이태원 핼러윈데이 치안대책, 서울청 기능별 대응 계획을 보면 안전사고라는 표현 그 이상의 상황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다. 이 전 서장이 참사 전날에 “문제 없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고, 참사 당일엔 대통령실 인근 집회가 끝나 기동대 철수를 요청한 점도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서울청장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직접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관할 경찰서가 제공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 보고를 종합했을 때, 대규모 인파 사고가 발생할 여지나 관련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판시했다.

참사 당일과 이후 대응에도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참사 당일 용산서의 추가 경력 지원 요청이 없었고, 김 전 청장이 참사 보고를 들은 직후 가용 부대 급파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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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진 전 서울청 112상황관리관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됐지만, 무죄를 선고 받았다. 과실과 참사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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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청장에 대한 판결은 세월호 참사 관련 지휘부의 재판 결론과 비슷하다. 당시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경청장 등 해경 고위직에 대해 재판부는 “제한된 정보로 세월호 침몰에 따른 인명 피해를 예견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김모 전 목포해경 123정장만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참사도 현장 지휘관인 이 전 서장(금고 3년형) 등만 처벌받았다.



과실 인정에도 처벌 無…“피해 인과관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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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17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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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일 당직 근무자로 서울청장 직무를 대리해야 하는 류미진 전 서울청 112상황관리관 등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우선 “상황실에 정착해서 즉시 보고를 받는 것과 유사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며 “휴대전화로 만으로는 상황관리관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류 전 관리관이 근무지를 이탈한 사실이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상황관리관 자리에 112시스템이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다른 당직 근무자인 정대경 전 서울청 112상황3팀장에 대해서도 “서울청에서는 CCTV를 볼 수 없고, 현장 출동한 경찰이 상황이 종결됐다고 보고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과실범 공동정범 한계”…유족, 판결에 즉각 반발



이번 판결로 대형 참사가 발생했을 때 현장 경찰만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금도 일선 현장 경찰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지휘부 무죄, 현장 유죄’라는 판례는 무책임하고 무리한 치안 정책에 명분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도 현장 관계자만 처벌받았다. 개인 과실이 모여 사고가 났다면 모두를 정범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로는 지휘부의 법적 책임을 묻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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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유족들은 서부지법 앞에서 이번 판결에 반발하며 검찰에 항소를 요구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문제가 있는데 죄가 없다’는 판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 살려 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신고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 대리를 맡은 백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재판으로 밝히지 못한 것들을 밝히고 책임자가 마땅한 책임을 지도록 제도적인 개선책까지 제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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