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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오늘과 내일/김윤종]국문과를 외국인이 채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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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김윤종 사회부장


10일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는 순간, 국내 문인들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20년 전인 2005년 5월 100여 명의 작가들과 함께 독도로 향했다. 당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세지자 작가들은 독도사랑을 담은 시를 낭송하는 예술제를 열었다. 취재차 배를 타고 독도로 향하면서 작가들과 문학을 토론했다. 고은 시인에게는 노벨상에 대해 물었다. “염원의 나무 자라는 미쁜 보석” “내 기특한 혈육”이라고 독도를 표현하는 작가들의 감성이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냐’고 묻는 과정에서 작가들 상당수가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제2의 한강 배출 어렵다’는 대학들

이런 인연 때문일까. 10월 10일이면 국내 작가의 자택으로 향하곤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시 인터뷰를 먼저 하기 위해서다. 매년 수상 실패로 아쉬움이 쌓였지만 이번 수상으로 사라졌다. 한국 사회도 축제 분위기다. 한강 소설은 엿새 만에 100만 권 이상 판매됐고, 소셜미디어에는 ‘문송(문과라 죄송) 사용 금지’ ‘국문과 쾌거’란 글이 확산됐다. 한강의 모교인 연세대 국문과에는 축하 현수막까지 걸렸다.

그런데 정작 한강의 꿈이 자라났던 대학 국문과에서는 “앞으론 ‘제2의 한강’을 배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경제 분야의 ‘피크 코리아(peak-Korea)’ 논쟁처럼 한국 문학이 이번 수상으로 정점에 섰지만, 향후 쇠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국문과 교수는 “요즘 국문과 신입생들은 ‘서정주’ 시인도 모른다”고 했다. 독서량이 적다 보니 교과서 속 작가조차 생소한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문학을 읽지 않으니 좋은 글을 쓰는 젊은층이 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학생들이 소설을 쓸 때조차 챗GPT로 초고를 쓴 후 그 내용을 다듬는다고 한다.

그나마 학부는 나은 셈이다. 또 다른 국문과 교수는 “석사 과정 학생 모두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밝혔다. 한국에 호감을 가지고 국문학을 전공하는 외국인은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깊이 있는 전공 수업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대학의 얘기다. 그럼에도 재정난 때문에 외국인 유학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국문과 중 콘텐츠창작학과 등으로 이름을 바꾸거나 아예 폐쇄된 곳이 수두룩하다. 국문과 등 어문 인문계열 학과는 최근 8년 새 800곳 이상 사라졌다.

독서 붕괴로 인한 작가 고사 막아야

전공자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성인 10명 중 약 6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연간 독서량은 1.7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조사에서는 “문해력이 과거보다 저하됐다”는 교사의 답변이 91.8%에 달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이자 이공계 인재가 국가경쟁력인 이 시기에 ‘국문과나 독서가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미 BTS, 기생충 등 한류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화강국도 맞다.

하지만 독서 습관 붕괴는 좋은 작품, 나아가 뛰어난 작가를 사라지게 한다. 읽는 습관이 줄어들면 좋은 작품이 발표돼도 소비할 독서 인구가 감소한다. 인세가 적어지면 작가는 본업을 포기한다. 이미 만연한 현상이다. 정부 지원마저 미흡하다. 문학 등 인문학 관련 내년 예산(281억 원)은 올해보다 24%가량 준다. 열악한 상황 탓에 요즘 국문과 학생들은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에서 문학을 하겠다’는 것은 모두가 육식인 사회에서 홀로 채식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노벨 문학상 수상의 벅참으로 보낸 일주일이었다. 이젠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차세대 한강’이 될 작가들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자신이나 딸의 이름을 딴 문학관 설립을 극구 사양했다. 그는 단지 말했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살 수 있게 해달라.”

김윤종 사회부장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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