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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하마스 수장 사망… 이제 전쟁 멈춰라” 목청 커진 휴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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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치적 해법 기회”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 수장 야히아 신와르(62)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이스라엘 정부가 17일 밝혔다.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과 인질 납치·살해를 지휘해 전쟁을 촉발한 인물이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지도자였던 그는 지난 7월 말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였던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스라엘에 암살당한 뒤 그 자리를 물려받았으나 석 달도 채우지 못하고 가자 남부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제거됐다.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내걸고 전쟁을 벌여온 이스라엘이 지도자를 잇달아 제거, 하마스의 와해 가능성이 커지자 1년여를 끌어온 전쟁이 전환점을 맞고 휴전 협상이 진전되리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7일 신와르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즉각적인 인질 석방과 항복을 요구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휴전을 넘어 종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미국, 전 세계에 좋은 소식”이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정치적 해법(휴전)을 도출할 기회가 왔다”고 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정의가 실현됐다. 가자지구에서 마침내 전쟁을 끝낼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도 인질 석방과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했다.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들의 가족 단체들은 “이제 전투를 멈추고 인질을 돌려달라”며 하마스와 이스라엘 정부 양측에 전쟁 중단을 호소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하마스와 이스라엘 내 강경파가 우세해 즉각 휴전은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마스는 신와르 사망 후 칼레드 마샤알 전 정치국장을 차기 지도자로 즉각 임명했다고 중동 매체들은 전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자살 폭탄 공격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 성향이다. 이스라엘 내 강경파와 연정을 구성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막 인질이 돌아오는 순간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백형선


신와르의 죽음이 알려진 17일 이스라엘 곳곳에선 시민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거나 ‘신와르가 죽었으니 전쟁도 끝내자’ 같은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많았다. 이스라엘에서 신와르는 ‘유대 민족 말살’을 목표로 평생을 살아온, 하마스 내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테러리스트로 인식된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습격 역시 신와르가 총지휘했다고 파악되면서, 이스라엘군은 그를 ‘제거 영순위’로 올려둔 상태였다.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의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는 지난 1년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를 추적해왔다. 하마스의 유·무선 통신을 감청·분석하는 시스템의 핵심 키워드 최상단에 신와르 관련 단어들이 올라갔다. 신베트 요원들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지상전을 통해 발견한 땅굴을 돌아다니며 그의 동선을 추적했다. 땅굴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생활용품 등에서 지문과 DNA(유전자 정보)를 추출, 신와르의 이스라엘 수감 시절 확보한 정보와 비교했다. 신와르의 목에는 하마스 지도자 중 가장 많은 40만달러(약 5억원)의 현상금도 내걸렸다. 군사 지도자인 라파 살라메(20만달러), 무함마드 데이프(10만달러)보다 훨씬 높은 액수다. 살라메·데이프는 7~8월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미 숨졌다.

신와르는 이틀 연속으로 한곳에 묵지 않는 등 수시로 거처를 옮기며 이스라엘의 추적을 피해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땅굴에 머물렀고, 이동 시엔 변장을 하고 인질과 경호원을 앞세웠다. 지난 2월엔 신와르가 배우자 중 한 명과 자녀 세 명, 동생 등과 함께 땅굴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이스라엘군은 그를 잡지 못했다. 신와르는 또 이스라엘의 감청 추적을 피하려 전화나 이메일 등은 일절 사용하지 않고, 점조직으로 구성된 인편으로만 소통했다. 이스라엘과 휴전 협상을 해야 할 당사자인 그의 은신으로 안 그래도 어려운 협상이 더 고착 상태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와르는 하지만 점점 조여 들어오는 이스라엘군 포위망을 피하지 못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신와르를 비롯한 하마스 핵심 지도부 제거에 실패하자 남부를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이스라엘군에 발각돼 16일 결국 제거됐다.

뉴욕타임스·BBC 등이 이스라엘군 관계자들을 인용해 보도한 신와르 사살 당시의 정황은 이렇다. 이스라엘군 보병 선임관 양성 기구인 ‘828 비슬라크 여단’ 소속 병력은 16일 오전 가자지구 라파 인근에서 수상하게 이동하는 팔레스타인 남성 셋을 우연히 발견하고 이들을 추적했다. 무인기(드론) 지원을 받으며 교전을 벌이는 중 두 명은 한 건물로, 이들과 떨어진 한 명은 다른 건물로 각각 몸을 숨겼다. 이스라엘군은 몰랐지만, 홀로 피신한 남성이 바로 신와르였다.

지원 요청을 받은 이스라엘군 탱크들이 출동하고, 정찰 드론이 건물에 진입했다. 드론이 전송한 화면에 비친 이 남성은 얼굴을 스카프로 감싼 채 팔 등에 부상을 입고 소파에 힘없이 기대앉은 모습이었다. 그가 드론을 보며 나무 막대기를 허공에 던지는 ‘최후’의 모습은 이후 이스라엘군에 의해 공개됐다. 곧이어 이스라엘 메르카바 탱크의 120㎜ 포가 불을 뿜자 아파트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 시점까지도 이스라엘군은 신와르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포연과 먼지가 가라앉은 다음 날, 무너진 아파트 잔해를 수색하던 이스라엘 병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신와르를 닮은 한 남성의 훼손된 시신이었다. 두개골 일부가 깨진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이스라엘군은 그가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눈 옆의 사마귀, 돌출되고 비뚤어진 치아 등은 사진과 영상으로 그토록 많이 보아온 원수(怨讐) 신와르의 생김새와 같았다.

발견 당시 촬영된 사진은 X(옛 트위터) 등에 유포됐다. 이스라엘군은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신베트로 보냈다. 그동안 모아놓은 지문·DNA 증거와 대조한 결과 손가락의 주인이 신와르라는 사실이 수 시간 만에 확인됐다. 이날 오후 늦게 이스라엘은 “신와르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팔레스타인인 4만2000명, 레바논인 2200여 명, 이스라엘인 1700여 명이 숨진 후였다. 지난해 10월 그가 지휘한 이스라엘 습격 당일에만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 1200여 명이 학살되고 250여 명이 납치됐다. 아직 인질 100여 명이 가자지구에 억류되어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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