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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신와르 최후 두고 이스라엘·아랍권 ‘선전 전쟁’···영상 공개는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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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 신와르 최후 모습 영상 공개

아랍권서 ‘끝까지 저항한 순교자’ 영웅화

“신와르, 죽기 직전 보다 사후에 더 지지”

“이스라엘 영상 공개, ‘신와르 신화’ 기여”

이, 땅굴 영상 공개하며 여론 반전 시도

경향신문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최후 모습이 담긴 드론 영상. 영상에서 신와르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파괴된 주택 안 의자에 앉아 있으며 다가오는 이스라엘군 드론을 향해 막대기를 던지며 저항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스라엘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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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1년간의 추적 끝에 지난 16일(현지시간) 사살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1인자 야히야 신와르의 최후 모습을 찍은 영상을 공개한 가운데, 아랍권에서 그를 영웅화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무인기(드론) 촬영 영상에 담긴 그의 최후를 두고 일종의 ‘선전 전쟁(Propaganda war)’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신와르의 죽음을 ‘도망자의 최후’로 적극 선전하는 한편 손가락이 잘린 그의 팔 사진이 담긴 전단을 가자지구에 뿌리며 하마스의 투항을 요구하고 있다. DNA 및 지문 정보 확인을 위해 이스라엘군이 시신에서 손가락을 잘라낸 사진을 보여주며 그의 최후를 조롱한 것이다. 전단에는 “신와르는 여러분의 삶을 파괴했고, 어두운 땅굴 속에 숨어 있다가 두려움에 떨며 도망쳤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스라엘 정치권 등에서도 신와르의 최후를 “겁쟁이의 종말” “굴에서 나온 쥐”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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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현지시간) 사살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조롱하는 벽화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거리에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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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랍권의 하마스 지지자들은 동일한 영상에서 신와르가 ‘최후까지 점령군에 저항한 전사’라는 점을 부각하며 영웅화하는 분위기다. 그간 이스라엘군이 선전했던 것처럼 신와르가 땅굴에서 이스라엘 인질들을 ‘인간 방패’로 삼으며 비굴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입고서도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이 촬영한 드론 영상에서 신와르는 남부 라파의 파괴된 건물 안에서 오른팔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으며, 이스라엘군 드론이 다가오자 다른 쪽 팔로 막대기를 던지며 저항했다. 드론을 통해 신와르의 모습을 확인한 이스라엘군은 이후 그를 조준해 탱크 포탄을 발사했고, 다음날 아침 신와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해당 건물에 진입했다.



피 묻은 전투복을 입은 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상징인 체크무늬 스카프 ‘카피예’로 얼굴을 가리고, 거의 잘린 오른쪽 팔을 철사로 동여맨 모습도 그의 ‘전사’ 이미지를 강화하며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WP는 중동지역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적어도 아랍 세계에선 이스라엘이 이 ‘선전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짚었다. 영상 공개 후 중동 주요 도시 곳곳에 신와르의 최후 모습을 담은 벽보가 붙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도 그의 ‘영웅적인 최후’를 부각한 이미지와 소셜미디어 밈이 확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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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의 최후 모습을 따라 하거나(왼쪽) 그를 영웅화한 소셜미디어 이미지. 출처 엑스(옛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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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미군에 의해 참호에서 끌려나왔을 때 목숨을 구걸해 지지자들을 실망시켰던 것과 달리, 신와르가 땅굴 은신처가 아닌 지상에서 적과 마주하는 모습이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고 WP는 짚었다.

하마스와 가까운 이란을 비롯해 중동지역 무장세력들은 물론 하마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며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타조차 신와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를 ‘순교자’로 지칭했다.

카타르에 기반을 둔 연구기관 중동글로벌문제위원회의 수석 연구원 베버리 밀튼 에드워즈는 “‘서사의 전투’에선 하마스가 승리했다”면서 “그는 땅굴에 있지 않았고 그의 주변엔 이스라엘 인질이나 팔레스타인 ‘인간 방패’도 없었다. 그의 최후 모습은 하마스에 대한 더 많은 지지와 신병들의 지원, 저항운동의 추동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주재 팔레스타인 대표를 지낸 나세르 알키드와도 “신와르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그가 가자 주민들을 버렸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이 반박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상 공개 후 아랍권에 영웅화 분위기가 일자, 이스라엘군은 곧바로 지난해 하마스 공격 직전 신와르가 가족들과 함께 가자지구 땅굴로 피신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영상 속 그의 부인이 수천만원짜리 명품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들고 있는 점을 부각하며 여론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하마스는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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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 공격 직전 신와르가 가족들과 함께 땅굴로 피신했으며, 그의 아내가 수천만원대 명품 가방을 소지하는 등 가자지구 주민들이 고통받는 동안 호화 생활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엑스(옛 트위터)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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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와르에 대한 지지는 생전보다 사후에 더 높아지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정책조사연구센터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팔레스타인인의 29%만이 신와르를 지지했다. 신와르가 섣불리 테러 공격을 일으켜 가자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상당했다.

한 가자지구 피란민은 WSJ에 “이스라엘 폭격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신와르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1년 넘게 목격해 왔는데 그의 최후가 담긴 영상으로 상황이 변했다”면서 “그 영상은 신와르가 끝까지 싸웠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애초 이스라엘의 영상 공개가 패착이었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인질 전문 협상가인 게르손 바스킨은 “이스라엘 정치권은 영상이 아랍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전혀 알지 못했고 신경 쓰지도 않은 것 같다”면서 “그들은 이런 영상이 아랍권에서 신와르의 유산을 새로운 종류의 살라딘(12세기 십자군을 격파한 이슬람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스라엘군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문제 책임자를 지낸 마이클 밀슈타인도 “신와르를 제거했다는 발표나 사진 한 장으로 충분했을 수 있다”면서 “이스라엘군은 신와르의 신화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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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 이스라엘군에 사살된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의 대형 사진이 걸린 광고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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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신와르의 죽음을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과 빗댔으나, 2011년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군은 작전 당시의 영상이나 시신 사진이 선전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WSJ은 아랍권에 일고 있는 영웅화 분위기로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집트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고 짚었다.

이들 국가는 하마스를 테러 집단으로 지정했거나 이들과 거리를 둬 왔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팔레스타인 지지 여론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우디의 한 방송국은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했다가 성난 군중들이 사무실에 난입하는 등 역풍을 맞기도 했다.

카타르에 기반을 둔 분쟁및인도주의연구센터의 무인 라바니 연구원은 “신와르의 죽음은 민감한 시기에 이 국가들을 곤경에 빠뜨렸다”면서 “이곳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보다 훨씬 약한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조직이 이스라엘과 훨씬 잘 싸우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부가 무력하게 미국과 유럽에 의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짚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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