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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윤-한 만남에 ‘김건희 라인’ 대동한 대통령…“청산할 뜻 없단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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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차담 장소인 파인그라스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건희 라인으로 분류된 이기정 의전비서관.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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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2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전날 면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면담 직후 대통령실 차원의 브리핑은 없었다. 이를 두고 보수언론에서도 ‘빈손’ ‘맹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한 대표의 김건희 여사 의혹 해법 요구에 윤 대통령이 ‘납득이 안 된다’는 취지로 반응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민심과 동떨어진 현실 인식에 아연한 반응이 많았다. 대통령실이 뒤늦게 면담 내용을 공개한 것은 이런 비판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전날 면담을 전후해 이런 신경전과 ‘이미지 정치’ 싸움을 곳곳에서 벌였다. 당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검찰 시절부터 쌓아온 20여년 관계가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 밖에서 대기…검찰 조사실?





두 사람의 면담은 21일 오후 4시30분으로 예정돼 있었다. 정치권에선 ‘오후 4시3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을 두고 설왕설래했다. 윤 대통령이 예정된 만찬을 ‘배수진’ 삼아 한 대표와의 면담을 오래 끌지 않으려는 시간 배치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 대표는 국회에서 면담 시간에 맞춰 출발했는데, 정작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해서는 20여분 ‘대기’해야 했다. 윤 대통령이 나토(NATO) 사무총장과 통화하고,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하느라 늦어졌다고 한다. 대통령 일정은 분 단위로 촘촘하게 짜인다. 급박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대체로 지켜지기 마련이다. 통상의 대통령실 업무 처리에 비춰볼 때 외국 정상 등과의 통화나 접견 시간은 사전에 상대방과 조율됐던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두고 친한동훈계인 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2일 아침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이 뭐 전화를 한다고 하면서 늦게 오셨다. 25분 정도 한 대표를 그냥 밖에다 세워놨다.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김 최고위원은 “안에 앉아서 기다린 게 아니었다. 밖에 계속 서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검찰 출신 특유의 ‘기선제압’ 수법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과거 검사들은 주요 조사 대상자를 부른 뒤 조사실 밖에 장시간 대기시켜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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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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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VS 윤 대통령, 참모 그리고 ‘김건희 라인’





한 대표를 대기시켰던 윤 대통령은, 면담 전 대통령실 경내를 10분 정도 산책했다. 대통령실은 면담과 관련해 모두 9장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10분에 불과한 산책 사진이 7장에 달한다. 산책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외에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박종준 경호처장 등 대통령실 참모만 동행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이 한 대표를 수행했지만 산책에는 빠졌다.



특히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뒤로 이기정 의전비서관이 파일철을 들고 걷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기정 비서관은 한 대표가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요구한 ‘김건희 라인’ 중 한 명이다. 외교적 만남이 아닌 대통령과 여당 대표 면담에 ‘의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김건희 라인 청산을 요구하러 간 한 대표를 상대로 ‘그럴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용산에서는 여섯 일곱 분이 우르르 서 있는데, 당에서는 아무도 없이 한동훈 대표 혼자 거기 들어가 있었다. 모양이 너무 이상했다. 이른바 김건희 여사 라인 비서관도 대동한 것은 ‘우리는 (대통령실 인적쇄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명시적 메시지 아니겠냐”고 했다.





한동훈의 빨간 파일…사진용 이미지?





대통령실이 공개한 면담 사진을 보면, 한 대표는 빨간 파일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김건희 의혹 관련 3대 요구안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파일 속 서류는 많지 않았다.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도 충분한 양이었다. 지난 4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과의 면담 때 A4 용지 10장을 주머니에 넣어갔다.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야당 대표가 아닌 여당 대표가 ‘민원서류’를 싸 들고 가는 모습이 공개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한 대표가 평소 이런 파일을 들고 다니는 것은 포착된 적이 없다. 면담 사진이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유럽 출장을 가며 빨간색으로 장정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손에 들고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난 바 있다.





이재명보다 못한 자리 배치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파일까지 싸 들고 온 한 대표가 들어주기 싫은 요구를 계속하는 ‘악성 민원인’쯤으로 보였을 수 있다. 대통령실이 면담을 위해 준비한 공간과 자리 배치 역시 이런 의중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간 대통령실이 공개했던 대통령 면담·접견 사진은 격식을 갖춘 공간에서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는 식이 대부분이다. 배석자는 면담자와는 따로 떨어져 앉는 것이 상례였다. 반면 이번 윤-한 면담에서는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는 형식이었고, 대통령 참모인 정진석 비서실장이 한 대표와 ‘동급’으로 같이 앉게 자리를 배치했다. 이 때문에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비스듬하게 엇갈려 앉는 모양새가 됐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교장 선생님이 학생을 놓고 훈시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앞에는 펜과 메모지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테이블보가 깔리지 않은 테이블 두 개는 높낮이가 달라 어긋난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담겼다. 이를 두고 ‘동네 카페에서 만났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공간적 홀대’는 지난 4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과 확연히 대비된다. 당시 윤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회담했다. 윤 대통령 앞에는 펜과 메모지가 준비됐다. 친한계에서는 “어떻게 여당 대표를 대하는 것이 야당 대표만도 못 하느냐”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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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미리 준비해 온 메시지를 품에서 꺼낸 뒤 윤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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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집으로 가자, 추경호만 따로 불러





두 사람 면담은 윤 대통령의 ‘예정된 만찬’을 이유로 저녁 6시15분 종료됐다. 애초 면담 성과 브리핑을 직접 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한 대표는 곧바로 귀가하며 빈손 면담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저녁 한 대표를 완전히 ‘패싱’한 것으로 해석되는 행동을 했다. 면담이 끝나자 추경호 원내대표를 따로 불러 회동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추 원내대표는 김건희 여사 의혹 해법과 관련해서 한 대표와 달리 대통령실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추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 대통령이 필요할 때 의원들에게 가끔 불시에 연락해 가벼운 자리를 갖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 대표가 그렇게 요구했지만 불발된 독대가, 윤 대통령의 전화 한 통으로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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