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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친일파 재산 환수했더니…보훈부, 친일파 후손에게 되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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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들이 지난 2007년 친일행위자 후손의 임야를 현장조사하고 있다. 친일재산조사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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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제정된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국가에 환수된 친일파 재산 일부가 수의계약 형태로 친일파 후손들에게 도로 매각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것인데, 귀속재산 관리의 실질적 책임을 가진 국가보훈부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인한 친일 귀속재산 현황을 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보훈부에게서 위탁받은 전국 1418개 필지 가운데 575개 필지가 매각됐고, 그 중 341개 필지가 수의계약으로 팔려나갔다. 이인영 의원실은 수의계약으로 팔린 341개 필지의 매수자를 검토한 결과, 적어도 12개 필지(1만3천여㎡)를 친일파 7명의 후손들이 사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친일재산귀속법 제정 이후 2006년부터 4년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이완용·송병준 등 친일파 168명의 부정한 재산을 확인하고 이를 국가에 귀속시켰는데, 정작 이 재산을 후손들이 도로 매수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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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되찾아간 이들은 이완용에 뒤지지 않는 친일행위자들의 후손이다. 정미칠적 고영희의 손자인 고흥겸은 일제하에서 일본 농상무성 기사를 지내고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으며 조부와 부친의 백작 작위를 이어받았다. 국가는 고흥겸의 충남 예산 땅 24필지를 환수했는데, 후손인 고아무개씨는 이 중 3필지를 국가로부터 수의계약으로 사들였다.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수부 담임(접수 담당) 위원을 지내고 일제하 공주·아산군수 등을 지낸 신우선의 경기도 고양시 땅 역시 국가에 귀속됐으나, 후손이 일부를 도로 매입했다. 그밖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홍종철, 장응상과 이선호 등도 비슷한 경우다.



친일파 후손들이 이렇게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도로 사들일 수 있었던 건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친일파 후손들은 인접한 토지나 부지 내 건물 등을 이유로 수의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따라 국유지 내 건물 또는 인접 부지를 소유한 사람의 경우 공개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같은 거래는 국유재산 처분시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 국유재산법 6조에도 어긋나고, “반민족행위자가 친일반민족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며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친일재산귀속법 1조에도 반한다.



이런 탓에 친일파들의 국가 귀속재산을 관리하고 매도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보훈부가 친일파와 후손들의 재산 관계에 대해 조사하고 판단할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환수 당시 후손들이 쟁송을 거듭하며 반발했던 만큼, 귀속재산을 다시 사들일 가능성이 컸는데도 이를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이번에 확인된 계약 내역은 일부 직계 후손의 명의를 의원실이 하나하나 대조한 끝에 밝혀낸 것이어서, 수의계약으로 체결된 341건 가운데 추가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처가나 방계 후손들이 계약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인영 의원은 “귀속재산을 관리하는 보훈부가 수의계약 형태로 친일후손들에게 되판 것은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친일재산귀속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며 “밝혀낸 내용 외에 의심스러운 사례들이 있다고 보인다. 보훈부가 전수조사를 통해 다 밝혀내야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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