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7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러 최고 문학상·선인세 2억… “감점 요인이던 한국 이름 이젠 보너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포스트 한강’ 김주혜·이희주 인터뷰

조선일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계에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 작가 김주혜(왼쪽)와 소설가 이희주가 두 주인공. /Nola Logan·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포스트 한강’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0일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문학계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그 뒤로도 낭보가 이어지면서 들뜬 분위기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16~20일)에서 한국 문학 판권에 대한 문의는 예년의 서너 배로 훅 늘었다. ‘포스트 한강’의 물결을 이어가는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주혜(37)와 소설가 이희주(32)를 만났다.

◇”한국 이름? 작가로선 보너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날, 또 다른 시상식이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주혜가 2021년에 쓴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로 러시아 최고 권위 문학상인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11일 알려졌다. 겹경사였다.

21일 저녁 본지와 줌으로 만난 김주혜 작가는 “한국 문학에 겹경사라는 말을 저도 많이 들었다”면서 “한국 언론뿐 아니라 러시아 현지 언론과 문학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많이 어리벙벙하고…. 워낙 씩씩하고 겁이 없는 천성인데도 약간 겁이 날 정도”라는 소감을 밝혔다. 모스크바에서 시상식을 마치고 며칠 전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다. 인천에서 태어났고 아홉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오래 자랐지만, 그에게 한국인 정체성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저 혼자만의 경사나 복이 아니고 한국을 대표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차분히 임무수행을 하자 결심했다”며 “문학의 고장 러시아에서 한국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0년대부터 시작해 1960년대까지, 한국 역사를 다룬 방대한 스케일의 소설. 집필을 시작한 2016년 겨울, 소설가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다니던 출판사를 관두고 마음을 식히기 위해 공원에 뛰러 갔다가 기이한 경험을 했다. “설경 사이로 환영처럼 호랑이가 뛰어갔고, 길을 잃은 사냥꾼의 모습을 봤어요.” 집으로 돌아온 그는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정신없이 20쪽 분량의 글을 써내려 갔다. 마치 무언가에 씐 것처럼. 그때 쓴 글이 ‘작은 땅의 야수들’ 첫 장 내용이다. “이 책은 제 뿌리에 관한 이야기예요. 계시처럼 소설을 쓰게 된 것은 깊숙한 곳에 잠재된, 한국을 향한 자부심이 나타난 게 아닐까요?” 환경 운동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멸종 위기인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을 위한 시민단체 ‘한국범보전기금’에 톨스토이문학상 상금 120만루블(약 1700만원)을 전액 기부했다.

다음 달 두 번째 장편소설 ‘밤새들의 도시(City of Night Birds)’ 출간을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차기작, 차차기작도 이미 계획이 잡혀 있다. 과거 뉴욕의 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그는 한국 문학, 한국 작가를 향한 시선의 변화를 체감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미 출판계에서 ‘한국 이름’은 감점 요인이었다. 이젠 아니다. 김주혜 작가는 “한번도 이름을 바꿔보지 않은 저로서는 ‘김주혜’라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늘 스트레스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장에서는 (김주혜라는) 제 이름을 가진 게 오히려 보너스면 보너스지, 절대로 흔하지 않지 않다”며 “그만큼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고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수입·수출 비율 9:1인데, 실감 안 나”

최근 영미 대형 출판사들과 파격적인 선인세 계약을 맺은 한국 소설가 이희주도 화제다. 2021년에 쓴 장편소설 ‘성소년’을 미국 하퍼콜린스와 영국 팬맥밀런에 각각 선인세 1억원을 받고 팔았다. 범죄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남자 아이돌을 납치한 네 여성의 비틀린 욕망을 보여준다.

21일 오후 광화문에서 만난 소설가는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겸업 작가’였다. 2022년부터 지난 7월까지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일했고, 그뒤 대학 행정실에서 잠시 근무했다. 냉정한 출판·저작권 업계의 상황을 낱낱이 알고 있기에 “더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한국 문학이 아무리 주목받는다고 해도 수입과 수출을 비교하면 9대1 정도거든요. 제 계약은 ‘프리엠트(pre-empt)’ 계약이라고, 다른 출판사들과 경쟁하지 않기 위해 높은 선인세를 제시한 이례적인 케이스예요. 정말 놀랍고 감사하죠.” 그는 아이돌 팬덤을 소재로 한 소설인 만큼 “K팝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은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2016년 장편소설 ‘환상통’으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성소년’과 마찬가지로 아이돌 팬덤을 소재로 하지만 “훨씬 내밀하고 섬세한 글”이라고 했다. “’강타 사랑해’를 쓰면서 한글을 뗐을 정도로 오랜 팬 구력을 자랑합니다. 수많은 아이돌이 저를 거쳐 갔어요.” “뻔뻔한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소셜미디어에 빗발치는 악플 때문에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2017~18년에는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2019년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쓰는 감각’을 회복했다.

데뷔작과 차기작 ‘성소녀’(가제)도 해외 판권 구매 문의를 받는 상황. 장·단편 계약도 상당하다. “2032년까지 작품 (청탁을) 안 받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들 용어로 이른바 ‘글빚’이 쌓인 것.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부담은 없고 제가 잘해야죠!”라며 씩씩하게 답했다. “업계에서 일해 봤으니까 정말 드문 기회인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주목받기 위해서 작품을 쓸 수는 없어요. 많이 팔리는 작가가 목표는 아니에요. 위대한 작가·예술가들처럼 더 용기를 내서, 더 커지고 싶어요.” 차세대 주자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그의 요즘 화두는 ‘상호성’, 즉 ‘나를 열어놓는 것’이다. “내가 바로 서기 위해 바닥에 발을 딱 붙이고, 나를 꽁꽁 닫아두는 게 중요한 줄 알았어요. 이제는 나를 열어두기로 했어요. 많은 것이 저를 통과하게끔요.”

☞김주혜(37)

조선일보

미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영어로 쓴 첫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이 2021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주목받았다. 14국에 번역·출간됐다.

☞이희주(32)

조선일보

중앙대 국문과 재학 중 2016년 장편소설 ‘환상통’으로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장편 ‘성소년’(2021) ‘나의 천사’(2024) 등을 펴냈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