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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미세 플라스틱’ 20년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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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해변에 밀려든 플라스틱 쓰레기들. 눈에 띄는 볼썽사나운 플라스틱 쓰레기 외에도 점점 잘게 쪼개져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은 환경과 인체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오염원이다. 미세플라스틱의 존재가 처음 보고된 2004년 이래, 지난 20년 동안 그동안 몰랐던 미세플라스틱 오염 실태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져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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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이라는 단어를 만든 영국 해양생물학자 리처드 톰슨(현 플리머스대학 교수)은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인 1993년 해변에 밀려든 플라스틱 쓰레기의 규모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시민, 학생들과 함께 해변 청소를 하며 플라스틱 쓰레기 목록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사람들은 타이어, 어망 같은 큰 쓰레기를 주웠지만, 그는 플라스틱 조각에 눈을 돌렸다. “가장 작은 조각은 어떠할까? 이런 물음이 생겼어요. 모래 샘플을 실험실로 가져와 현미경으로 보니 모래 아닌 조각들이 눈에 띄었고 다름 아닌 플라스틱이었습니다.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었던 거죠.”(예일대학 매체 인터뷰, 2024)



오랜 해변 조사와 실험실 연구를 거쳐 나온 2004년 논문은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렸다. “바다에서 사라지다: 플라스틱은 다 어디에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짧은 한쪽짜리였지만, 미세플라스틱이 1960년대 이후 급증했으며 그런 플라스틱을 해양 생물도 섭취한다는 충격적인 실태를 보고했다. 논문은 미세플라스틱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엄청난 규모로 환경에 축적되어 있다는 심각성을 알렸다.



미세플라스틱은 이름을 얻자 세상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회고 인터뷰에 따르면, 논문은 주말에 발표됐는데 휴일 캠핑을 마치고 연구실에 출근했을 때 기자들이 보낸 수십개 메일이 와 있었고 당일 오전에 여러 방송 인터뷰를 해야 했다. 해양생물학자에게 부업 같았던 미세플라스틱 연구는 이제 본업이 됐다.



‘미세플라스틱 20년’을 맞아 톰슨 연구진은 최근 ‘사이언스’에 “미세플라스틱 오염 연구 20년―우리는 무엇을 배웠나?”라는 제목의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 2004년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미세플라스틱 오염은 지난 20년 동안 7천편 넘는 논문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됐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안뿐 아니라 심해, 강과 호수, 토양과 대기, 그리고 에베레스트산 정상 부근에 이르기까지 환경에 널리 축적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사람의 혈액, 태반, 간, 신장에서도 발견됐다. 인체 영향에 관한 연구는 현재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톰슨은 논문에서 향후 5~10년 안에 다양한 유형의 미세플라스틱이 인체 건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가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미세플라스틱 연구 20년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협약을 마련하자는 움직임도 빨라졌다. 다음달 25일부터 부산에서는 국제 협약을 위한 유엔의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회의(INC-5)가 열린다. 부산 회의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톰슨은 많은 과학적 증거 덕분에 국제 협약 논의가 촉발된 점을 반기면서도 협약 합의가 쉽지 않은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톰슨 교수의 바람대로 모쪼록 부산 회의에서 실질적인 글로벌 규제 협상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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