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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단독] '#기부' 태그에 속은 초등생…자기도 모르게 사기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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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8월11~12일 당근마켓에서 신세계상품권 모바일 교환권 거래를 하다 사기 의심 계좌로 더치트에 신고당한 뒤 3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의심 계좌로 분류된 촉법소년의 토스 계좌.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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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에 사는 초등생 이도현(12·가명)군의 토스 금융 계좌는 지난 8월 이후 3개월째 사기 신고 계좌로 등록돼 있다. 촉법소년인 도현군이 온라인 사기 중간책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도현군은 지난 8월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계정에 ‘#기부’라는 게시 글을 다수 올린 A씨에게 신세계 모바일상품권 기프티콘을 당근마켓에서 대신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0만원권 상품권 2장을 18만원에 내놓고 거래가 성사돼 돈을 받으면 15만원만 A씨가 일러준 토스(toss) 계좌로 송금하고 차액인 3만원은 도현군에게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도현군은 “상품권을 대신 팔아주면 기부를 하는 착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제안에 응해 당근마켓에 ‘신세계상품권 2개 판매’ 글을 올렸다. 거래는 이내 성사됐다. 도현군이 본인 토스 계좌로 송금받은 18만원을 뺀 15만원을 송금했다. 상품권 구매자는 이마트에서 모바일 상품권을 지류(종이) 상품권으로 바꾸곤 도현군에게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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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이모군이 지난 8월12일 당근마켓에서 이미 교환된 신세계상품권 모바일 교환권을 판매했다가 판매자로부터 받은 항의 사진. 손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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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튿날 두 번째 거래에서 문제가 생겼다. A씨에게 전송받아 판매한 해당 상품권은 이미 교환한 것이었다. 졸지에 18만원 사기를 당한 구매자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도현군은 A씨에게 “형 사기 아니지?”라고 물었지만, A씨는 “이거 사기야”라고 말한 뒤 대화방을 나가 도현군을 차단했다.

이 사건은 현재 동탄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경찰은 촉법소년인 도현군을 조사한 뒤 A씨를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A씨는 이미 동종 범죄로 인천남동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된 이력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청소년들을 상대로 “기프티콘, 현금을 기부하겠다”며 ‘#기부’ 등 해시태그(hashtag)로 꾀어내 이미 사용한 상품권, 기프티콘 등으로 온라인 중고 거래를 하게 한 뒤 덤터기를 씌우는 사기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SNS상에 ‘기부’, ‘give’ 계정으로 기프티콘이나 현금을 주겠다는 계정은 현재까지도 여럿 존재한다. 도현군 아버지 이모씨는 “인터넷뱅킹 서비스가 편리해 토스 계좌를 만들어 줬는데, 사기 범죄에 악용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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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기부 등으로 초중학생 등 미성년자들에게 용돈을 주거나 기프티콘을 주겠다고 꾀어 중고 사기 거래를 시키고 잠적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온라인 사기 범죄에 소년들이 가담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화폐 메소, 서든어택 SP 등 게임머니나 카카오 기프티콘을 판매한다고 속여 거래 대금만 받고 튀는 이른바 ‘먹튀’를 신고를 받아 잡고 보니 촉법소년이었다거나 미성년자였다는 일선 경제범죄 수사관들의 경험담도 여럿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근마켓 사기 사건의 경우 피혐의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촉법소년인 경우가 더러 있다”며 “중고거래 사기범들이 미성년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점을 악용하고, 자신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사기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2022년부터 증가 추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에 제출한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고거래 사기 피의자는 지난 2021년 3718명, 2022년 3536명, 지난해 3901명에 이어 올해 9월까지 2371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피해자도 2021년 9351명, 2022년 7335명, 지난해 8787명으로 늘었다.

경기남부경찰청 자문위원인 한진철 변호사는 “사기 사건에 자녀가 연루된 경우 신속히 경찰에 자진 신고하는 편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며 “미성년자를 꾀어내는 만연한 사기 범죄에 발을 들이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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