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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문혁’ 다룬 죄? 당국 조사 받는 중국 ‘SF계 거물’[시스루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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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평론가 야오하이쥔

경향신문

류츠신의 공상과학 소설을 각색한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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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수상 류츠신의 소설 ‘삼체’
2006년 잡지에 연재 세계적 성공

넷플릭스 드라마 방영 ‘빌미’ 추정
민주주의 옹호 과거 발언도 재조명
SF에 ‘검열 칼날’ 거세질까 우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중국 공상과학소설(SF) <삼체>를 출판한 편집자 겸 평론가 야오하이쥔(58)이 기율 위반으로 당국 조사를 받고 있다.

24일 홍콩 성도일보에 따르면 쓰촨성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는 전날 야오 쓰촨SF세계잡지사 이사 겸 총괄 부편집장을 심각한 규율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혐의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반중 성향 매체인 대기원시보는 중국 문학·출판계에 지난달부터 야오 부편집장이 당국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전했다. 지난 9월10일부터 야오 부편집장의 웨이보에 새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고 메신저 연락도 끊겼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쓰촨SF세계잡지사 부편집장 야오하이쥔.


야오 부편집장은 지난달 28일 중국 SF계의 권위 있는 상인 은하상 시상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1966년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야오 부편집장은 1988년부터 SF문학 평론가 및 출판인으로 활동했다. 사비를 들여 잡지 ‘성운’을 창간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SF 고전으로 평가받는 해외 작품 200편 이상을 소개했으며 잡지의 이름을 딴 성운상을 만들었다.

2005년 쓰촨성에 기반을 둔 잡지 ‘SF세계’의 부편집장이 됐고, 2018년 쓰촨SF잡지사 이사 겸 부편집장이 됐다. 그가 편집장이던 2006년 5월 ‘SF세계’에서 류츠신의 <삼체> 연재가 시작돼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류츠신의 장편소설 <삼체>는 문화대혁명 시절 광기 속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천체물리학 전공 여성 과학자가 어느 날 외계 문명으로부터 전파를 받는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광활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인류가 처한 운명을 대담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받는다. 2015년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했다. 19개국 언어로 번역돼 2300만부 이상 팔렸다.

팬들은 물론 당국도 <삼체>를 중국의 문화적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작품으로 간주해왔다. 원작에서 중국은 미국 못지않은 과학강국으로 그려진다.

올해 초 넷플릭스가 각색한 드라마 <삼체>가 방영되면서 원작 소설 <삼체>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이 점이 이번 기율조사위의 조사 빌미가 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넷플릭스는 중국에서 정식으로는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와 사이버관리국은 드라마가 문화대혁명을 광기의 현장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주시했다고 전해진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에서도 좋게 평가받지 못하지만 마오쩌둥 초대 주석이 주도한 일이기 때문에 노골적 비판도 제한된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영문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드라마 <삼체>가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혹평하는 기사를 낸 바 있다. 미국 드라마라는 점도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로 꼽힌다.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는 SF가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장려해왔다. 중국 문화계에서는 SF가 급진적 상상력의 보루로 여겨진다. 다른 장르에 비해 급진적 상상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기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특유의 상상력과 비판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중국 SF 작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야오 부편집장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SF에도 강화된 검열의 칼날이 향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야오 부편집장이 과거 민주주의를 옹호했다는 사실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야오 부편집장이 2018년 4월13일 웨이보에 “중국몽은 인권의 꿈, 민주주의의 꿈, 입헌주의의 꿈이 아닌가? 얼마나 오해받고 있는가? 중국몽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게시물을 올렸다고 캡처 화면을 게시했다.

중국몽은 ‘근대 이래로 모든 중국인들이 꾸고 있는 가장 위대한 꿈’이라는 의미로 ‘아메리칸드림’에 비견해 시진핑 체제가 내세우는 의제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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