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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일용 엄니’로 시작해 ‘수미 누나’로 마쳤다…'역행자’ 김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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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파 배우 김수미 별세

제작진도 걱정한 30대의 할머니 연기

첫방송 후 ‘일용 엄니’에 눈길

최불암 “촬영장에 열가지 김치와 밥 가져와 나누더라”

조선일보

‘일용 엄니’ ‘욕쟁이 할머니’로 TV와 스크린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배우 김수미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음식 만들어 지인들과 나눴던 그는 ‘요리하는 연예인’의 원조 격이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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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로 치달으며 농촌이 급속히 해체되던 시절, 당대 최고 차범석 작가가 극본을 쓴 ‘전원일기’가 1980년 방송을 시작했다. 드라마는 양촌리 유지인 김 회장(최불암) 집과 가난한 일용이(박은수)네 두 가정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웃음은 주로 ‘일용 엄니’ 담당이었다. 홀몸으로 아들을 키운 ‘일용 엄니’는 가난했고, 까막눈이었으며 질투심이 많고 엉뚱했다. 그 ‘일용 엄니’ 김수미(본명 김영옥)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75세.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수미씨가 25일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오전 8시께 119구조대에 의해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씨의 마지막을 발견한 사람은 아들 정명호씨였다. 정씨는 “경찰이 어머니의 사인을 ‘고혈당 쇼크사’라고 전해왔다”고 했다. 김수미씨는 피로 누적 등으로 지난 5월부터 활동을 중단해왔다.

극중 65세 일용 엄니를 맡은 김수미의 나이는 당시 31세였다. 아들 역의 박은수보다 두 살이 어렸다. ‘김 회장’ 최불암씨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이연현 PD와 캐스팅을 논의하면서 김수미가 해내겠나 하는 의구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녹화 첫날, 김수미가 흰머리로 분장하고 이 하나에 검은 칠을 딱 하고 나타난 거다. 그리고 대사를 하는데 ‘아, 이건 되겠다’ 싶었다. 첫 방송부터 김수미가 가장 주목받았다.”

‘30대 할머니’는 배우로서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 김수미도 처음엔 배역을 거절했다. “김수미가 안 하면 일용네 집안을 모두 빼버린다”(담당 PD)는 승부수, “네가 하지 않으면 다른 탤런트들까지 피해를 입지 않겠느냐”(김혜자)는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1949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족과 함께 상경했다. 숭의여중고를 마친 김수미는 고 3 때 봄가을로 양친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 국어국문과에 합격했으나 등록금 25만원을 내줄 사람이 세상에 한 명도 없어 울었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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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과 인간미, 때론 격정과 슬픔이 있었던 농촌드라마 '전원 일기'에서 일용이네 집은 가난한 농촌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일용엄니 김수미씨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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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김영애, 안옥희, 염복순, 허진 등과 함께 MBC 공채 탤런트 3기에 합격하며 연기자가 됐다. 1971년 이후 ‘수사반장’ ‘행복’ ‘아다다’ ‘민비’ ‘113 수사본부’ ’새아씨’ 등에 출연했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개성 강한 외모의 김수미는 ‘조신한 타입’을 선호하던 당시 취향 탓에 주연 대신 조연을 주로 맡았다. 김수미의 연기력은 ‘전원일기’를 통해 비로소 피어나, 당시 조연 배우로는 드물게 MBC 연기대상과 백상예술상 등 여러 연기상을 받았다.

22년간 ‘일용 엄니’ 인생이 끝난 후 ‘배우 김수미’의 인생이 새로 시작됐다. 김수미는 준비된 ‘B급 오락물’의 주연이었다. 2005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카리스마 있는 뱀파이어 역할을 시작으로, ‘욕쟁이 할머니’의 탄생을 알린 영화 ‘마파도’ ‘가문의 영광 3-가문의 부활’은 김수미의 연기 폭이 얼마나 더 확장될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수많은 ‘욕쟁이 할머니’ 캐릭터가 나왔지만, 그 원조는 단연 김수미였다.

가수 정훈희의 주선으로 만나 결혼한 사업가 정창규씨와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억척스럽게 가정을 지키고 돈을 벌었다. 교회 간증을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을 미워했고 증오했다.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고 나니까 옛날에 연애할 때의 감정으로 돌아갔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풀리지 않던 앙금이 다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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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불암과 김수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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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는 ‘요리하는 연예인’의 원조 격이다. 최불암씨의 회상. “우리가 ‘전원일기’ 스튜디오 촬영분을 일주일에 한 번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찍었는데, 어느 날 김수미가 총각, 열무, 배추, 파 등 김치 열 가지와 밥을 해 갖고 왔다. 다들 맛있다고 난리가 났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 매주 밥과 김치를 갖고 와 그걸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고 했다.

2005년 간장게장 사업을 시작해 ‘간장게장 김수미’로도 유명했고, 2018년 tvN에서 방송된 ‘수미네 반찬’을 통해 요리 실력을 뽐냈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밥 잘해주는 누나’로 불릴 만큼 음식으로 동료와 선후배를 챙겨왔다.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네 둘째 아들로 나왔던 배우 출신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스타를 잃었다기보다는 가족을 잃은 것 같은 슬픔”이라며 “후배 배우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일용 엄니’로 시작해 ‘욕쟁이 할머니’를 거쳐 ‘수미 누나’로 기억될 의미 있는 역행, 김수미의 일생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명호 나팔꽃에프앤비 대표, 딸 주리씨, 며느리 서효림(배우)씨. 장례식장은 한양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11시.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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