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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박성희의 커피하우스] 한국 문화 르네상스 300년 주기설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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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전 세종은 훈민정음·측우기·관현악 작곡

18세기 정조때도 문예부흥… 수원화성은 세계유산

지금 우리는 임윤찬·한강·봉준호·윤여정 보유국

300년 간격으로 찾아오는 한국의 문화 르네상스

축복에 감사…하지만 정치만 바라보면 한숨나온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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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가까운 곳에 명소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지난주 방문한 수원 화성이 그랬다. 화성행궁 옆 에어비앤비에 묵게 된 나는 모처럼 수원 화성의 위용을 코앞에서 확인하고 청량한 기운에 흔들리는 갈대숲의 풍광과 성곽 위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즐기며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러 외국을 가면서도 정작 바로 옆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이제야 제대로 보다니, 부끄럽기까지 했다.

한때 주택을 허물지 않고 구조를 살려 개조한 숙박 시설은 어느 관광객이 와도 불편함이 없는 시설과 센스 있는 인테리어로 시스템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 명소로 떠오른 행궁동 주변은 서울 익선동과 북촌, 가로수길과 경리단길과 한옥 마을을 버무려놓은 인상이다. 역사와 함께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 젊고 늙은 이들을 불러 모으는, 그야말로 ‘문화 융성’의 현장이다.

행궁(行宮)이란 왕이 지방에서 임시 거처하는 궁으로, 화성행궁은 정조의 비전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향한 효심으로 유명한 곳이다. 수원 화성이 있는 팔달구 남창동의 거리명 주소는 정조로와 행궁로 등. 아무리 권세가라도 30년이면 잊히는 세태에 정조라는 이름은 18세기 문예부흥기의 유산과 함께 300년을 가고 있다.

그보다 300년 앞선 15세기 역시 괄목할 만한 문화 중흥의 세기였다. 그때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글’이라는 훈민정음을 창제해 국민의 입과 귀를 열어주었고, 농사짓는 백성을 위해 측우기와 천체 관측 기구를 제작했다. 서양보다 앞서 음악을 기록한 정간보를 창안했고, 관현악 곡을 작곡해 문화를 고양했다. 세종대왕 역시 광화문광장의 한가운데 동상으로, 매일 만지는 만원권의 초상으로 우리 옆에서 600년을 살고 있다.

그때부터 300년이 흐른 21세기 현재, 왜소하고 추한 정치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문화 중흥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을 발견한다. 소설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리스트가 환생한 것 같다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쇼팽의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윤여정은 오스카상을, 박찬욱 감독은 칸영화제 감독상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첫 에미상을 받았다. 사실 그런 수상 소식은 이제 별로 새롭지도 않다. 이른바 ‘K컬처’가 세계로 뻗어나가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랜 장기인 춤과 노래는 우리 아이돌에게 전 세계 팬이 열광하게 만들고, 영화와 드라마는 창의적 상상력으로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수출한 웹툰은 우리가 이른바 원조이자 플랫폼이다. 그 밑에는 우리 문화의 축적된 근육이 있다. 15세기에는 한글 창제로 문화적 반석을 다지고 18세기 영·정조 때 문예를 부흥시킨 데 이어 21세기 다시 한국 문화의 중흥을 예감한다는, 이른바 ‘한국 문예부흥의 300년 주기설’이 일리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사실 이 개념은 한국미래학회 회장을 지낸 최정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1997년 새 대통령에게 띄우는 공개 서한에서 제시한 것이다. ‘21세기 한국 문화의 중흥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에서 최 교수는 다가오는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전망하고, 민족사에서 한국 문화의 제3 르네상스가 될 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울러 “군주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뒤틀리고 인심이 순하지 못하여 악기(惡氣)가 올 것”이라는, 조선 중기 문신 이언적의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를 인용하며, 밀레니엄을 열 새 대통령에게 새 천 년을 이끌 ‘심지(心志)’와 ‘심술(心術)’을 주문하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적 중흥을 이끌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전제가 있는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발전이 그것이다. 정치권력은 도덕적이어야 하고, 경제는 풍요롭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경제 정책과 문화 정책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세종은 중농 정책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최 교수는 역설한다. 문화와 경제의 시너지는 사실 이미 증명이 끝난 명제라고 할 수 있다. 위 설명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구가하는 문화 중흥은 격동 속에서도 민주화를 향해 꾸준히 발전해 온 우리의 정치와, 눈부신 산업화와 정보화로 이룬 경제적 성공에 힘입은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토끼가 가져다준 문화 부흥인 것이다. 국가 간 경제 발전 차이를 연구한 공으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 MIT 교수도 한국을 바람직한 제도에 기반해 세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룬 나라로 확인해 주지 않았나.

아제모을루 교수가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다. 21세기 문화 중흥 토대를 마련한 사람은 주로 예전 지도자이며, 근래 정치인은 국민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도덕적 기준과 상실을 지닌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애국심과 비전, 도덕성과 공적 의식, 자기희생과 염치,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옛 지도자들에게 못 미치는 깜냥의 사람들이 요즘 정치인의 평균이다. ‘정치꾼’은 자신의 선거를, ‘정치가’는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전자에 가깝다. 그래서 다시 그에게 질문하고 싶어졌다. 그의 연구에서 지도자 요인은 통제된 변인이었는지, 모자라는 정치인들이 계속 집권해도 문화 강국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말이다.

세상 곳곳이 전쟁으로 어지러운 이 즈음, 300년 만에 찾아온 문화 르네상스를 축복처럼 누리면서도 정치 쪽을 바라보면 그 축복이 얼마나 지속될지 불안해진다.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나라는 정치만 바뀌면 돼.” 나도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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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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