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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특파원 리포트] 다시 생선 뒤집는 中國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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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타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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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일과 같다(治大國如烹小鮮).’

임금의 도리를 논하는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이 고사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초기부터 치국 이념으로 언급해왔다. 생선을 구울 때 자주 뒤집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에 진득하게 익기를 기다리고 조심스럽게 건드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치국도 좌우로 흔들리듯(忽左忽右) 변덕을 부려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나는 실무 담당 정부 관료들은 “중국의 강점은 정책을 수시로 수정하는 유연성”이란 말을 많이 한다. 시진핑은 분명 이 나라가 쉽게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는데, 당·정 관료들은 전혀 다른 ‘국가 운영 레시피’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모순된 듯한 두 주장을 하나로 묶어보면, 꽤 그럴듯한 결론이 나온다. 중국은 나아가는 큰 방향을 절대 틀지 않되, 장애물을 만나면 손쉽게 변칙 수단을 도입한다.

중국이 오늘날 경제 위기를 ‘요리’하는 방법에서도 이러한 전략이 드러나고 있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미국과의 경쟁과 외부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돌파’와 ‘안보 확보’를 경제 정책의 두 축으로 내세웠다. 당연히 단기 경기 부양에는 소극적이었고, 리스크 예방이나 장기적인 기술 투자엔 적극적이었다. 올해 2·3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고 “큰 가마솥이 식는다”는 내부 경고가 나왔을 때도 3중전회 등에서 기조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4일부터 분위기가 반전됐다. 중국 정부가 지급준비율·기준금리 인하와 주택 구매 규제 완화 등 온갖 단기 부양책을 총동원하며 경기 띄우기를 시작한 것이다. 부양책 발표 직후부터 이달 8일 사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022년 이후 하락분(21.30%)을 모두 만회했다.

문제는 중국의 대대적인 경기 부양이 ‘기조 전환’이 아니라 ‘장애물 넘기’에 가까울 것이란 점이다. 중국이 4분기 직전에 부양 패키지를 발표한 것은 당장 올해 ‘5% 안팎’의 경제 성장 목표 달성이 위태롭다는 점을 인지하고 긴급 처방을 내렸다는 지적이다. 또 이번 대책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인프라·부동산에 돈을 밀어 넣은 4조위안 규모의 돈 풀기와 다르다. 대출 금리 인하, 주택 계약금 비율 조정 등 가계 소비 여력을 높이고 국민 심리를 다독이는 간접적인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다. 관심을 모으는 재정 확대 규모도 부양책 발표 한 달이 지나도록 미지수다. 중국이 1998~2002년 디플레이션 위기를 겪었을 당시에 내놓은 국유은행 상업화 등 파격적인 조치도 기대하기 어렵다.

중국의 갈 길은 정해져 있으니 바깥에 있는 한국은 기대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경제 정책에서 기술·안보가 가장 중요한 중국이 경기 회복을 위해 장기간 대규모 돈 풀기를 이어가고, 민영 경제 살리기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의 희망 사항에 가깝다는 의미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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