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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백영옥의 말과 글] [377] 헤어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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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갓 깨친 80년대 초반,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 매대에 누워있던 책 하나가 유독 기억나는데 제목이 ‘작별의 예식’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야 그것이 여성해방 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릴 때의 작은 경험이 오랫동안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어른이 돼 작별을 한다면 품위 있게 해야겠다고 그때 생각했던 것 같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짐을 이별이라 하고, 제 힘으로 힘껏 갈라서는 헤어짐을 작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별은 ‘겪는’ 것이고 작별은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남은 우연히 벌어지기도 하지만 작별은 의지의 영역이란 뜻이다.

헤어짐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이혼이다. 최근에는 이혼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이혼할 결심부터 이혼을 숙려하고, 이제 혼자가 됐음을 선언하는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과거와 달리 이혼을 개인의 흠이 아니라 선택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됐고, 무엇보다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보고자 하는 우리의 관음증도 이런 프로그램이 증가한 이유일 것이다. 십 수년 전 방영된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프로그램은 이제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포맷으로 변했다.

만남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면 헤어짐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다.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질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대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끝나야 할 인연이라면 잘 헤어져야 한다. 유명인의 이혼은 특히 더 그렇다. 이혼 후에도 서로의 이름이 아주 오랫동안 연관 검색어로 한데 묶여 뜨기 때문이다.

결혼에 실패한 게 아니라 이혼에 성공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혼은 서로에게 상처다. 아이까지 있다면 그 상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때로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피하고, 다행을 찾기 위해 작별의 예식은 필요하다. 만날 때가 아니라 헤어질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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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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