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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쉽게 처방받는 ‘마약성 다이어트 약’… 중독 땐 환각에 자살시도 위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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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국내 상륙 후 선풍적 인기 ‘위고비’의 명암

의료계, 식욕억제제 오남용 지적… 작년 환자 1인당 평균 200개 처방

마약류 약물 청소년에겐 금지… 현실에선 연평균 3600명 받아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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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0시. 서울 구로구의 한 피부과 병원에서 진료가 시작되자 10분 만에 대기자가 11명으로 늘었다. 동아일보 기자가 오전 10시 50분경 진료 접수를 한 뒤 1시간 10분가량 기다리자 그제야 이름이 불렸다. 기자는 음주 여부와 식습관 등을 묻는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잰 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다른 설명 없이 바로 “비만치료제 처방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자 식욕억제제 등 8종의 약물을 처방했다. 그중 하나는 ‘엠피온정’이었는데 이는 마약성 향정신성 의약품에 해당된다. 중추신경계에서 교감신경과 유사한 작용을 통해 식욕을 억제하는 디에틸프로피온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진료비는 5만 원이었다.

이 병원처럼 환자 상태를 자세히 보거나 이것저것 묻지 않고 마약성 다이어트 약물을 처방해주는 병원은 온라인에서 이른바 ‘비만 치료 성지’로 불린다. 이런 병원들을 정리한 리스트도 공공연하게 돌아다닌다.

의료계 안팎에선 마약성 식욕억제제가 오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2만6000여 명이 2억2500만 개 이상의 식욕억제제를 처방 받았다. 환자 1인당 식욕억제제를 200개가량 처방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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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기준에 따르면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사용해선 안 되지만 현실에선 어렵지 않게 처방받을 수 있다. 식약처가 국회 복지위 소속 박희승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2023년 연평균 청소년 3608명이 29만3399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1인당 평균 81개씩 처방받은 것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디에틸프로피온 성분의 식욕억제제는 필로폰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어 쉽게 중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심하면 환각 상태를 일으키거나 자살 시도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과다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온 환자도 있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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